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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by 맘씨 posted Sep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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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도시락 싸가서 먹은지 어느덧 3년째다. 사회 초년생일 땐 도시락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아이들 어릴 적엔 출근 과정 자체가 전쟁과도 같아서 밥을 싸 갈 여력조차 없었다. 그렇게 거의 매일 점심을 사 먹었고, 가까운 곳이 물릴 때면 동료들과 근교의 맛집 탐방을 가기도 했다. 물가가 높아질수록 점심 식대로 나가는 비용도 꽤 늘었던 듯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 중, 고학년 학부모가 되니 이제서야 아침이 좀 여유로워졌다. 다 같이 아침밥 먹고, 나도 회사에 갈 준비 다 마치고, 남편 출근에 아이들 등교까지 모두 보내고 나서도 10여 분의 시간이 남는다. 

내 도시락 하나 싸기는 충분한 시간이다. 밥솥의 밥 푸고, 아침 반찬 남은 거에 국이나 찌개 좀 덜고, 달걀프라이 한두 개 해서, 간단한 샐러드나 쌈장에 버무린 청양고추 등을 함께 챙긴다. 부엌 한켠에서 늘 웃고 있는 내 소중한 고양이모양 도시락가방에 모두 넣어 담아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끝.

 

12시. 점심 시간이다. 오전 일을 얼추 마무리지은 후, 도시락을 들고 회사 건물 캔틴으로 향한다. 캔틴은 고층이라 전망이 시원하고 구비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다 작은 도서관까지 한 켠에 있어 사랑해 마지않는 공간이다. 남산타워가 한 눈에 보이는 자리에 착석을 하고, 도시락을 꺼내 전자렌지에 따뜻하게 데워 탁자에 펼쳐두고 먹는다. 아, 먹기 전 인증샷을 찍어 식구들에게 전송하는 것도 필수다. 엄마가 먼저 사진을 보내면 아이들도 점심먹은 것을 찍어 보내주는 게 우리 집 규칙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같이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동료들이 몇 있었다. 밥 나눠 먹으면서 수다도 떨고, 서로의 도시락통 내용물 품평도 하면서. 우리 집 반찬이나 김치가 맛있게 된 날엔 넉넉히 싸가서 맛도 보이곤 했다. 둘러앉아 먹다가 또 입이 심심하고 궁금하면 캔틴 컵라면과 토스트도 두어 개 익혀 먹고. 도시락메이트와 하는 얘기는 아무리 길어져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부서 얘기, 사람 얘기, 살림 얘기, 애들 얘기, TV 얘기, 여행 얘기.. 

슬프게도 이제는 도시락 친구들을 포함한 많은 부서 인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간 상황이다. 다들 점심들은 어떻게 먹으면서 일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집에 계속 있어야하니 자연스레 밥도 반찬도 더 많이 하려나? 아니야 오히려 집에 있으면 사먹거나 시켜먹는 경우가 많을지도.. 그래도 애들 챙겨주면서 같이 먹을테니 좋기야 하겠다, 뭐 이런저런 생각들이다. 

여지없이 돌아온 오늘의 점심 시간, 나는 혼자 캔틴으로 올라와 주섬주섬 도시락을 펼친다. 늘 그렇듯 눈 아래로는 남대문이, 눈 위로는 남산타워가 펼쳐지는 나름의 뷰 맛집 도시락의 공간에서. 홀로 먹지만 풍경 덕분에 허전함이 덜한걸거야, 하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따뜻하게 데워진 집반찬을 맛있게 입에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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