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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드윅 보스만을 생각하며

by 맘씨 posted Sep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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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근길에 영화배우 채드윅 보스만(Chadwick Boseman)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했다. 1977-2020. 향년 43세,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부인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곁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2003년 '서드 워치'로 데뷔해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의 전기영화 '42'와 흑인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전기영화 'Get On Up'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마블의 '블랙 팬서' 남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미국의 흑인 배우다.

잘 몰랐던 배우인데다 마블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로서는 생소한 배우였다. 그가 출연한 작품은 한 편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뉴스를 찾아 읽었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검색해 탐독했다. 43세라는, 죽기엔 너무 아깝고 창창한 그 나이 때문이었으리라. 역시 43살에 돌아가신 울엄마 생각에 더 마음이 쿵하며 안타까운 것도 있었다.

퇴근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니, 첫째와 둘째 모두 너무 젊은 나이라며 애처로워한다. 눈물많은 엄마 슬퍼서 울진 않았냐 걱정도 해준다. 그 와중에 첫째는 채드윅 보스만에 대해 나보다는 좀 더 지식이 많았던지 이런저런 숨겨진 이야기도 건네 주고, 추모의 의미로 블랙팬서를 시청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그 날 우리 식구는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블랙 팬서 감상의 시간을 가졌다. 

영화는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와칸다 제국의 왕, 트찰라로 분한 채드윅 보스만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애잔했다. 사슴같이 크고 깊은 그 눈은 여러 감정과 아픔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서로 싸우고 죽이고 배신하며 쟁탈하는 내용들로 가득한 와중에 그의 표정은 왜 그리 처연해 보였는지. 대장암 3기가 진행중일 때 촬영한 작품이라고 하던데, 그 어마어마한 고통과 불안을 다스리고 감내하며 얼마나 스스로를 다잡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그의 슬프면서도 따뜻한 눈빛은 내 마음에 계속 남았다. 그의 작품이 계속 궁금해져, 아이들과 며칠 뒤에 "마셜"을 함께 보자고 약속했다. 미국 내 흑인 최초의 대법원 법관이 된 서굿 마셜에 대한 전기 영화다. 채드윅 보스만이 바로 그 마셜을 연기했다고 하니, 그 눈으로 감정선을 어떻게 표현했을지가 궁금해진다. 

금요일 밤인 오늘 남편과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 중에 작고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영화 마셜에 함께 출연한 조쉬 개드-겨울왕국의 올라프 성우로도 유명한 배우이다-의 sns를 보게 됐고, 채드윅이 죽기 3일 전 절친한 친구인 조쉬에게 보낸 문자를 읽었다. 텍스트와 함께 의역된 내용을 옮겨본다.

CATCH THE RAIN

If you're like me, maybe you looked at the week's forecast and found that it's supposed to rain for three straight days; not without breaks of sunlight and reprieves of moist gloom, but yeah it's gonna be coming down like cats and dogs. Great. We're stuck inside these damn quarantines because of the COVID, and now we can't even get no sun in Cali. Come on now!

But now that the rain has stopped and today's storm has cleared, I urge you to go outside and take a DEEP breath. Notice how fresh the air is right now, after our skies have had a 3 week break from the usual relentless barrage of fumes from bumper to bumper LA commuters, and now today's rain has given the City of Angels a long overdo and much-needed shower. 

Inhale and exhale this moment, and thank God for the unique beauties and wonders of the day. We should take advantage of every moment we can to enjoy the simplicity of God's creation, whether it be clear skies and sun or clouded over with gloom.

And hey, if the air is this clear right now, and it does rain tomorrow, I might even put jars and bins out and catch the rain. Throw that in the water filter and I have a water more alkaline than any bottled brand out there.

<만약 당신이 LA에 있다면, 오늘 아침 끊임없이 내리는 희귀하고 평화로운 빗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다면, 아마도 당신은 일기예보를 보고 3일 내리 비가 내릴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한 줌의 햇살도 없이, 촉촉한 어둠이 쉴 틈도 없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것이다. 거 참 잘 된 일이군,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 갇혔는데 이제 캘리포니아에서 햇빛을 볼 수 조차 없다니. 제발!

하지만, 이제 비가 그치고 폭풍우가 걷혔으니 밖으로 나가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해보자. 얼마나 공기가 맑고 상쾌한지 느껴보라. 하늘은 캘리포니아를 가득 채운 통근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로부터 3주간 휴식을 취했다. 또한 그간의 폭우는 LA가 굉장히 필요로 했던 소나기를 선사했다. 

숨쉬는 이 순간, 고유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맑은 햇살이 비치는 날이든, 어둠으로 흐려진 하늘이든, 우리는 그 모든 순간 신이 창조한 것들의 소박함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친구여, 공기가 이렇게나 맑은데, 내일 비가 내린다면 나는 밖에 나가 비를 담을것이다. 그렇게 담은 비는, 그 어떤 브랜드의 생수보다 맑은 것임이 분명하다.>

고통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생에 대한 감사와 찬미로 가득했고, 수많은 팬들과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그 마음을 그대로 안겨주는 멋진 사람이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배우이자 영원한 블랙 팬서. 아픔없는 곳에서 부디 평안히 잠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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