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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영화 <문어>

by 맘씨 posted Sep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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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짧게는 3-4분에서 길게는 20-30분,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능있는 감독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대학 때 같은 학교 언론정보학 친구가 만드는 단편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내 역할은 술고래 폭력 남편을 의도치 않게 살해한 후 고뇌하고 방황하다 결국 자기 목숨을 끊는 참으로 우울한 내용이었지만, 친구들과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촬영했던 기억이다.

정식 장편영화 못지않게 단편영화의 구성들도 흡입력 있는 것이 많다. 실제로 단편영화제와 초단편영화제가 매년 활발히 개최되고 있으며 많은 감독과 예술가, 배우들이 참여한다. 영화관람을 좋아하는 나는 초단편영화제를 종종 찾았고, 큰애가 어린이심사단 활동을 할 때 함께 가서 구경도 했었다.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던 영화배우들을 실물 접견해서 더 즐겁고 신나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나를 설레이게 한 건 상영된 여러 주제의 단편영화들이었다.

이번 해에도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가 개최되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상으로만 공개가 되었다. 아이들 관람 신청을 하니 영화제에서 영상 링크를 보내주셨다. 총 5개의 초단편 영화들이다. 주말을 이용해 우리 식구 모두재미있게 관람을 했다. 네덜란드 영화 "봄", 터키 영화 "문어", 프랑스 영화 "남자 프레스"와 "프리퀀스", 호주 영화 "리부티드"가 그것들이다.

그 중 나는 터키의 초단편영화 "문어"가 좋았다. 12분 34초짜리, 엔진 에르덴 감독의 극영화다. 비취빛 물색이 아름다운 터키의 한 해변가. 한 눈에도 똘똘하고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7,8세 정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해수욕을 하고, 축구를 하고, 농담따먹기를 하며 종일 놀던 두 친구는 뭐 더 새로운 것은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낚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들 아버지며 동네 아저씨는 낚시에 애들은 저리가라며 내쫓고, 심심해하던 두 아이는 여자아이의 할아버지 집에서 몰래 빼낸 낚싯대와 빵을 미끼로 낚시에 본격 돌입한다.

처음의 설레임과 신남도 잠시, 해초만 건져지는 성과 없는 상황과 몇 시간에 걸친 오랜 기다림은 두 아이를 지치게 한다. 결국 늦은 오후 기진맥진한 아이들은 낚시를 접으려 하는데, 바로 그 때 묵직한 물고기가 낚싯대에 걸려든다. 때마침 고깃배를 타고 허탕쳐 돌아오던 어른들이 두 꼬마의 낚싯대를 넘겨받아서, 성공적으로 잡힌 물고기를 끌어올린다.

무게감 있던 물고기의 정체는 문어였다. 3kg쯤 되어보이는 아주 커다랗고 온 몸이 붉은, 생명력이 넘치는 문어다. 꼬마 주인공들은 대견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눈초리로 문어를 어루만지며 탄복한다. 문어가 너무 귀엽다며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 기쁨도 잠시, 어른들은 곧장 맛있는 저녁거리라며 문어의 머리를 벗겨 뒤집고 해변 바닥에 여이어 내려친다. 탕. 탕. 탕.

패대기쳐지는 문어 소리를 배경으로, 점점 일그러지는 두 아이의 얼굴 표정이 꽤 한동안 클로즈업된다. 환희에 가득하던 남자아이 눈에는 어느새 그렁한 눈물이 고이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던 여자아이의 놀라 벌어진 입은 이 황당한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투다. 슬픔과 실망, 놀라움과 체념이 모두 뒤섞인 표정연기를 두 아역배우가 너무나 잘 해냈다.

영화는 이렇게 세상 잃은 표정으로 문어를 바라보는 아이들 얼굴과 함께, 그와는 대조되는 밝고 생기발랄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끝이 난다. 시원한 바다 풍경, 소박한 해변 마을의 모습, 무엇보다도 어린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눈망울이 뇌리에 오래 남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려면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감정의 관문이 있는 것일까. 내가 잡은 물고기가 오늘의 밥상에 오르는 일에 대해 인정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그 아이들은 또 낚시를 하게 될까, 아니면 진절머리를 낼까. 문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던 꼬마들의 그 맑은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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