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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겨울 백두대간 산행기_비로봉에서 조항산까지

by 라키 posted Dec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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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이 계획된 속리산의 야영장을 향해 달리며 조 브룩스의 노래를 들었다 언플러그드 기타와 묵직한 베이스가 어우러진 선율들은 익숙하고 편안했지만 운명적일 때도 감미로울 때도 두근거릴 때도 장난스러울 때도 있었으며 거친 듯하면서도 매력적인 보컬은 기타소리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밤의 경부고속도로는 안개가 살짝 내려 앉아 도로변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나트륨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을 산란시키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간혹 든다 도로에 남아 있는 스키드마크들중 일부는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잡은 브레이크 자국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 우리는 참 태연하게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야영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 시설에 아무도 없으니 산정상에서의 비박보다 오히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바람이 제법 불어 체감온도는 상당히 낮았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제법 포근하게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 물을 끓여 라면밥을 해먹었다 다음 산행부터는 메뉴를 좀더 다양하게 정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청주를 마시면서 텐트 위에 사각거리며 눈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살짝 쌓여 미끄러운 상태였다 법주사 입구 주차장이 있는 곳을 지나쳐 세심정 휴게소가 있는 곳부터 산행을 하고 싶은 바램이었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덕에 4킬로미터 남짓 더 걸었는데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코스 또한 줄곧 오르막길이어서 대간 길에 진입하는 것만으로 진을 모두 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속리산은 기기묘묘한 거대한 바위와 수많은 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으로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비경들이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러 사찰들과 수많은 기도처가 있는 신령스럽기도 한 산이거니와 국보와 보물들 또한 도처에 산재해있기도 하다 몇몇 바위들은 실로 거대해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겨 그곳에서 소원을 빌며 기도를 하고 싶어한다 해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세심정 휴게소를 향해 포장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여러 차들이 내 곁을 지나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이륜 구동 차량들은 결국 눈이 쌓인 경사지에 모두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구형소나타와 카니발 그리고 벤츠까지 모두 평등하게 멈추어 서서 운전자들이 눈이 덮힌 도로에 흙을 뿌리고 있었다 눈길 오르막에서는 이륜구동은 안된다 벤츠를 비롯한 외제차의 이륜에 후륜은 말할 것도 없다 싶었다

 

속리산을 오르며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생각했다 신문에 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자살로 죽어 가고 있고 수많은 변사사건이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다 병원에서 질병으로 죽는 것은 제외하는 것이니 불행하게 죽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다 한국의 남녀 자살율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어떤 사회의 자살율은 그 사회의 정신 건강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이고 위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자살율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병든 사회 중 하나라는 말이다

 

암과 같은 질병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였다 현대인들이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는 집과 먹을거리와 마시는 공기가 육체를 이루는 모든 것이고 그 사람을 둘러싼 말과 이야기와 관계들과 환경이 사람의 정신을 이루는 모든 것이다

 

사는 집! 제대로 지어진 한옥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많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온돌 난방이다 암세포는 열에 매우 민감해서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활동을 정지하고 더 올라가게 되면 소멸하기 시작한다 구들난방에 대해 이야기를 모두 하려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으나 하나만 예를 들면 후라이팬 위에 땅콩을 올려놓고 열을 가하면 땅콩의 껍질만 타지만 후라이팬에 모래를 덮고 그 안에 땅콩을 묻어 열을 가하면 땅콩 속부터 익는 법이다 열을 받은 모래 알갱이에서 나오는 에너지 때문이다 나무를 태워 나오는 수천도의 열로 구들돌을 가열하여 구들돌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사람을 속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구들 난방 또한 이와 같은 원리다 겨우 70~80도 남짓의 보일러물이나 스팀, 난방기 따위로 난방을 하는 현대적인 방식의 난방이 껍질부터 태우는 땅콩 가열 방식과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현대적인 방식의 난방으로는 사람 몸 속에 있는 나쁜 세포들에 열을 가할 수 없다

 

카이스트를 나와 유명회사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중 한달동안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감기약을 먹고 지내다가 어느날 출근길에 극심한 통증으로 도저히 출근 못하겠다 싶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6개월 남짓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k선생은 구들돌에 누우면 느낌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통증이 가신다며 구들돌에 누워 있는 것을 그리 좋아라 하였고 그와 함께 먹거리, 비타민 등등을 열심으로 챙겨 당시 의사가 말한 6개월이 한참 지난 당시에도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아직 k선생은 한번 불을 때면 3일은 뜨끈뜨끈하다는 시골 큰 구들돌 위에서 투병 중에 있으나 암과의 전쟁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은 다른 수많은 완쾌자들과 마찬가지로 거뜬하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천왕봉을 10분 가량 남겨놓은 지점에서 대간길에 진입하여 아이젠을 착용하고 암릉길을 걸었다 천왕봉에서 상고암 비로봉 입석대를 거쳐 가는 능선길은 바위와 눈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속리산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휴게소! 그렇지 않아도 밥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고 있던 중에 등장한 휴게소가 너무 반가워 얼른 들어가 감자전과 한잔술을 주문하여 먹었다 감자전의 맛은 일품이었고 술한잔으로 나온 신선주는 신선들이 마시는 술인양 참으로 시원하였다

 

문수봉을 거쳐 문장대에 도착! 구름 위로 우뚝 솟아오른 듯한 거대한 바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 위에 올라서니 세상이 모두 내려다보였다 과거의 황제들이 궁을 높게 높게 지으려 한 것은 세상을 내려다 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래보아야 결국 모두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밤티재로 내려가는 길을 찾으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문장대 밤티재 늘재로 이어지는 길이 폐쇄되었다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그 취지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대간길 자체를 폐쇄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상주 화북면 방면으로 하산한 후 택시를 타고 늘재까지 이동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화북면 방면 속리산 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 해가 산을 넘어가기 시작하였고 기온은 급강하. 얼마를 더 내려가자 나타난 식당을 발견하고 얼른 들어갔다 한파가 몰아치는 바깥에 비하면 식당 안은 천국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와 며느리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된장찌개를 주문하자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 준비를 하시더니 혹시 팥죽을 좀 드실런지 하고 물으신다 나는 얼른 네 하고 대답하였고 오늘이 동지 무렵인가 이제 내일부터는 해가 좀 길어지기 시작할런가 생각하였다

 

큰배낭을 메고 바깥에서 자고 다니는 여행자들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것일까 이 추운 날에 어떻게 밖에서 자냐며 손사래를 치고 늘재까지 갈 콜택시를 여기저기 확인해  불러주시더니 배낭의 버클를 찾는 손이 허공을 헤메고 있으니 손수 버클을 채워주신다

 

따뜻한 문명의 영향권을 벗어나 다시 야생으로! 콜택시를 타고 늘재에 도착하자 거의 밤이 될 무렵이었다 성황당이 있고 혼령비와 백두대간임을 알리는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그 공터에 텐트를 치고 땀으로 젖어있는 옷들을 모두 벗고 마른 다운자켓과 다운바지 다운버선을 꺼내어 입고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가 누워 청주를 마시고 이런 저런 정리들을 하며 밤을 보내었다 물을 끓여 날진 물통안에 넣어 침낭 안에 둘까 하다가 핫팩을 버선 안에 붙이고 자기로 하였다 내쉬는 숨은 금방 얼어버려 텐트 벽에 달라붙었고 텐트를 건드릴 때마다 눈이 되어 내렸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는데 역시 선배들이 날진물통 난방을 이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갖고 온 물통 안에 물들이 모두 얼어 물을 녹여 마실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데 아침나절을 보내버렸다

 

해발 984미터의 청화산까지의 길은 속리산을 등에 업고 오르는 이어지는 오르막길. 전망은 훌륭했고 눈이 쌓여 있었으나 앞서 출발한 산행팀이 길을 내주어 정상까지 무사 도착! 정상에서 만난 산행객 네분은 나를 보시더니 얼른 와서 커피 한잔하고 가라며 권한다 혹한의 바람을 피해 얻어 마시는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 청주의 반도체 회사에 다니시는 분들이고 시간을 내어 청화산 등반을 오셨단다 계속 북쪽으로 걸어갈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물이며 김밥이며 주려고 하셔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던 김밥 한줄을 잘 먹겠습니다 하고 받았다

 

청화산부터는 눈이 쌓여 길을 제대로 찾기 쉽지 않은 상황. 나침반과 지도와 GPS로 길을 더듬어 갔다 갓바위재를 향해 암릉길을 걷던 중 조항산 부근의 암릉들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눈이 쌓여 얼어있을 것이 분명한 바위 꼭대기의 상황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갓바위재에 이르러 의성저수지로 내려가는 마지막 철수 지점을 지나 조항산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눈위에는 여러 짐승들의 발자국들이 산길을 따라 나 있었고 그 무렵부터 멧돼지의 발자국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만약 멧돼지가 나타나 공격하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나무 뒤로 피하는 것 이상의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기합을 크게 넣어주고 다시 눈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나타난 암릉길. 바위를 얼음이 덮고 있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여 있는 상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인지 아니면 바위 옆의 공간으로 눈이 얼어 있어 디디면 절벽을 향해 비끄러지는 곳인지를 알기 위해 스틱으로 반복해서 확인해야 했다 상당한 정도의 경사를 지나기를 수차례. 이윽고 암릉 사이의 암봉 꼭대기에 올랐으나 사방이 십수미터의 낭떠러지인데 눈과 얼음으로 뒤덮혀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몸을 날려버릴 듯한 세찬 혹한의 바람과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길과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내가 딛고 있는 바위 한가운데서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여차저차 위험한 순간들을 지나 조항산에 도착했고 조항산의 정상을 뒤덮은 리본들은 무사히 도착한 내게 인사를 하는 듯 나부꼈다

 

고모치에 이르러 고모치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임도쪽을 향해 하산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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