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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리고 맥주

by 맘씨 posted Aug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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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동안 아침 출근 전마다 남편이 커피를 내려주었다. 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해 식구 모두 함께 먹고 나면, 남편이 곧장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갈아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수순이었다. 콩 갈리는 위잉 소리와 향긋하게 퍼져나가는 커피 냄새가 청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던, 아침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커피를 단칼에 끊었다. 며칠 안 된 일이다. 25년 넘게 마셔온 커피인데 칼바람 날리듯 그리도 매정히 버릴지는 몰랐다.

연유를 물으니 깊은 잠이 안 와서란다. 젊을 적에야 커피가 수면에 지장을 그리 안 준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커피와 불면의 상관관계가 꽤나 느껴진다는 것이다.

잠에 지장을 주면 할 수 없지.. 하고 있는데, 남편은 자기가 안 마시는 상황에서 마눌만 내려주기는 또 억울했던 모양인지 커피 그라인더와 머신까지 죄다 부엌에서 치워버렸다. 그래서 졸지에 덩달아 나도 출근 전 메모를 쓰며 한 잔씩 따뜻하게 마시던 모닝 커피의 기쁨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됐다.

커피 좋아하는 분들이야 워낙 많지만, 특히나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하는 상황이라면 좋든 싫든 커피와 뗄래야 뗄 수 없어지는 관계일 터. 내 주변에도 스타벅스며 커피빈이며 투썸이며 단골 커피매니아들이 수두룩하다. 나 역시 일이 많은 날엔 테이크아웃 아침커피를 잔뜩 사서 동료들에게 돌리기도 하고, 여럿이서 점심을 먹은 후엔 당연하다는 듯이 커피집으로 발걸음이 향하곤 했다. 어디 원두가 맛있네, 어느 블렌딩이 좋으네, 어느 전문점이 잘 내리네, 등등 커피에 관련된 수다도 얕은 지식을 총동원해 서로서로 신나게 나누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다. 모닝커피가 끊긴 서운함은 며칠 갔을 뿐, 아침마다 배즙이나 사과즙, 딸기블루베리주스나 칡차 등으로 더 건강하게 목을 축이고 나니 몸이 더 가뿐해진 느낌이다. 눈 뜨자마자 간절하던 커피가 그다지 생각도 안 나게 됐다. 물을 더 많이 자주 마시게 됐고, 점심 후에도 커피 대신 녹차나 홍차를 우려 한두 잔씩 마시니 배가 덜 더부룩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장 대부분의 동료들이 재택중인 상황도 식후커피를 끊는 데에 일조를 했다.

이렇듯 집에서의 모닝커피와 점심 식후커피가 슬며시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린 요즘. 커피는 거의 끊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나지만, 하나 못 끊고있는 게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바로 시원한 맥주다.

맥주는 과음해서 취하면 다음 날 머리가 너무 아프고 그 숙취도 다른 주종보다 오래가기에 적당히 마시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여름의 주말이나 무더운 바람 솔솔 불어오는 한밤중엔, 꼭 시원한 맥주 한 캔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친정아빠에게 처음 배웠던 술. 남편과 제대로 진도나가게 해준 매개체. 큰애 낳고 조리하던 중 마셨던 시원한 페트의 눈물나던 그맛. 이제껏 참 많이도 마셔왔고, 독일 살 땐 거의 매일 마시며 맥주 축제까지 놓치지 않고 다녀오고, 이번 주도 몇 캔 마셨고 다음 주도 한두 캔 마실듯 한, 그렇게 앞으로도 쭉 계속 마실 것만 같은 맥주.

커피도 끊은 이 와중에, 몸 생각해서 맥주 대신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면 될 것을. 내 건강에도 좋고 새벽에 화장실 안 가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이성은 이렇게 말하지만 내 무관한 손길은 이미 냉장고 홈바에 시원하게 저장된 캔맥주를 한두 캔씩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 오늘 안주는 뭘로 할까 하며 눈을 찡긋이 맞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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