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없는 음식을 들자면 바로 밥이다. 밥은 가장 기본이 되는 주식이자 부식보다 훨씬 중요시될 때가 많기에 밥을 엄연한 음식 요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밥을 나는 제일 못한다. 매번 알쏭달쏭 확신이 안 서서 어렵다. 냄비밥도, 압력솥 밥도, 심지어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기압력밥솥 밥조차 나에겐 매번 마음을 다잡고 도전해야 할 과제이자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긴장되는 과제와도 같다.
옛 문헌에 한국인은 밥짓기를 잘해서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또 솥 속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고 했단다. 그 말이 한국인 후손인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음식이나 특식, 각종 면식보다도 따순 밥 한 그릇이 좋은 밥순이지만 내가 지어낼 때마다 기복이 생기니 때로는 너무 슬프기까지 하다. 정말이지 밥을 맛있게 잘 짓고 싶다.
나는 공간감각 및 수학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15년을 해 온 운전이 여전히 서툴고, 지도를 보면서도 길찾기에 영 소질이 없다. 학창시절 수학 과목은 공식이며 예상문제를 최대한 외워 겨우겨우 해냈다. 이건 다시 생각해봐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나이기에 계량, 수치, 양 조절은 아무래도 좀 난해한 분야다.
그래서 나는 밥물과 라면물 잡는데에 종종 여전히 서툴다. 간을 가감하며 하는 음식은 괜찮지만 밥도 라면도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쌀 전용 컵과 라면 전용 컵을 구비해놓긴 했으나 이조차도 가끔 계량에 고장이 난다. 전기압력밥솥은 쌀과 곡식만 안치면 무엇이든 맛나게 완성시켜 주는 신통한 가전인데. 기술이 조금만 더 발전해서 내가 잡은 밥물이 적당한지, 과한지, 적은지를 알려주는 센서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밥은 자주 진밥 나아가 떡밥이 되곤 한다. 밥알 찰기가 좌르르 흐르다 못해 수분기가 뚝뚝 묻어난다. 좋게 봐준다면 소화가 참 잘 되는 건강에 좋은 밥이라고나 할까. 내가 된 밥을 싫어해서 무의식중에 물을 더 넣나 싶기도 한데, 다행히도 식구들 모두 된 밥보다는 진 밥을 조금 더 선호하기에 유야무야 넘어간 적이 꽤나 많았다.
최근에는 우리 집 쌀독을 바꿨다. 작은 항아리통에 넣어두던 쌀과 잡곡을, 새로 맞춘 진열장에 맞는 버튼식 쌀독으로 변경했다. 항아리를 쓸 때는 쌀이며 잡곡을 내 전용 컵으로 정확히 계량해서 그럭저럭 밥물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버튼식 쌀독은 내게 가늠이 힘든 양으로 계속 곡물이 쏟아져 내렸고 나는 금세 패닉이 왔다.
처음 몇 번 혼자 밥을 하다가 물 양을 아예 못 맞춰 정말이지 죽밥을 만들었더랬다. 물 조금 더 부으면 눌은밥이 될 만한 그런 밥이다. 보다못한 남편이 원래 내가 쓰던 계량컵으로 다시 양을 맞추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시간이 배로 드는지라 또 한두 번 바쁘다고 내 멋대로 밥을 했더니만 결과물이 매번 뒤죽박죽이 됐다.
재택이었던 어느 날이다. 점심으로 딸내미가 지은 밥솥의 맛난 밥을 다 먹었다. 6학년 딸이 나보다 밥을 잘 한다는 건 우리 집 기정사실. 저녁즈음 다시 백미와 현미쌀을 섞어 안쳤다. 세심하게 계량컵으로 다시 계량할까 고민하다가 내 감을 믿어보자 하며 느낌만으로 과감하게 밥물을 잡았다. 취사 버튼을 누르고, 다른 요리를 준비하면서 흥얼거리고 있으려니 아들이 부엌으로 나온다.
"엄마, 열심히 저녁 준비하시는군요. 밥 눌렀어?"
"응. 근데 엄마가 이번에도 감으로 물 잡아서, 너무 믿지는 말아줘. 헤헤."
멋쩍은 내 대답에 아들이 건네온 말.
"엄마밥은 음.. 슈뢰딩거의 밥이네. 뚜껑을 열면 그 결과가 완전히 반반이야. 아주 잘되었거나 아쉽거나. 흐흐."
오, 맞네.
밥솥이 열려야 관측가능한, 솥 안 세계 속 서로 다른 밥 상태의 반반 확률의 공존이랄까.
정말 내 밥은 슈뢰딩거의 밥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