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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먹던 도시락의 추억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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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반갑다. 정말 철없고, 무모하고, 그래서 여러모로 바보 같았으면서도 참 나름대로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던, 당시 4년의 청춘 시절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다. 

나는 동기들 중에서도 결혼과 취직을 가장 이르게 한 편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는 사실 경조사를 제외한 동기들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여유가 생기고, 동기들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각자의 가정을 대체로 잘 꾸려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가끔 약속을 잡아 모이게 됐다. 졸업한 지가 15년 가까이 되었으니 학부 때부터 더하면 20년에 육박하는 오랜 인연이다. 그래서인가 오랜만에 만나도 큰 어색함이 없다. 자꾸 화제가 옛날 이야기로 돌아간다는 특징은 있을지언정.

대학시절의 인맥의 큰 축이라면 동기들 반 모임과, 동아리 커뮤니티가 있다. 두 모임은 크게 겹치지 않으면서도 결이 다르게 끈끈한 친분과 정을 유지하고 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이다. 시험이나 과제, 프로젝트가 있을 때면 몇날 며칠을 식구처럼 부대끼며 지내기도 했다. 밥도 참 많이 나눠 먹었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간식이든. 4년간 밥정을 참 듬뿍 쌓아갔던 인연이다.

얼마 전 동기 모임을 하다가 불현듯 생각난, 도시락에 관한 추억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보기로 한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봄이었다. 막 들어간 단과대의 연극동아리, 곧 있을 첫 공연을 준비하느라 공강 시간이며 수업을 마치고서도 계속 연습실에서 맹연습을 지속하던, 열정 넘치는 새내기 시절이었다. 

그 때는 왜 그리도 틈만 나면 배가 고프던지. 시도때도 없이 허기가 져서 참 많이도 먹었다. 학관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두 그릇씩 깨끗하게 비우고는 또 분식이며 주전부리에 탐닉하곤 했다. 공강 시간에는 옆구리에 파일을 끼고서 동기들과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먹고싶은 메뉴가 있으면 아빠에게 미리 말하고는 얼른 하교하여 저녁에 배가 터지도록 먹기도 했다. 참 가열차게 열심히도 먹던 때였다.

그렇게 늘 허기지고 굶주려 있던 나이니 동아리 연극 연습 내내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대사 외우기 및 발성 연습이며 동작 시연 등 신체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들도 많은데다 연극 씬 하나 하나를 다 맞춰보아야 했기에 리허설은 밤이 늦도록 계속되기 일쑤였다. 원기 보충을 위해 연습실 한 켠에는 식수와 음료수, 지분지분 집어먹을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지만 밥순이인 나로서는 크게 끌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간은 연습 후 밥 먹는 시간이었다. 간식 말고 밥 말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기획비로 스태프와 단원들 밥값을 충당하려면 순전히 가성비로 승부할 수 밖에 없는데, 당시 제일 만만하던 메뉴가 저렴한 프랜차이즈 한솥도시락이었다. 정문 앞에 자리잡고 있던 한솥 점포, 대학 1학년 때 나는 그 집의 도시락을 메뉴별로 다 섭렵한 것 같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내 몫의 도시락을 열 때 느껴지던 기쁨과 약간의 조바심이 기억난다. 제대로 된 식탁도 없이 맨 바닥 무릎에 올려 나무젓가락 하나만으로 집어먹던 값싼 도시락이지만, 고된 연습을 끝내고 먹는 그 맛은 무엇과도 비교불가한 꿀맛 중의 꿀맛이었다. 정신없이 먹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는 별로 없었겠으나 그렇다고 혼자 먹었다면 맛과 감흥은 확연히 떨어졌을 거다. 다 같이 온기를 나누며 먹었기에 더 각별한 맛이었음이 분명해진다.

그렇게 많이도 맛나게 먹던 프랜차이즈 도시락을 대학 졸업하면서는 거의 사먹지 않게 됐다. 주변에 점포가 없던 것도, 접근성이 나쁜 것도 아니었음에도 자연스럽게 나는 도시락과 멀어졌다. 4년간 너무 먹어 물린 것일수도 있다. 딱히 끌리지 않았고 굳이 찾아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도시락에 갖던 추억과 애착은 이렇게 스물스물 희미해져 가는건지.

다만 한 번쯤, 다시금 그 시절처럼 연습실 바닥에 빙 둘러앉아 동기들과 도시락을 나눠먹고픈 소망은 든다. 그 때만큼의 허기짐, 각별함, 피끓는 청춘의 열정적인 분위기는 없을지라도, 당시의 기억 소환을 통해 가슴이 잠시 일렁이고 뜨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춘 시절 허겁지겁 먹던 도시락에의 추억은 그렇게 불현듯 다시 찾아와 나를 미소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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