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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벚꽃나무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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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하는 전철역 앞에 작은 벚꽃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얼마나 작냐면 나무둥치가 내 키보다 조금 더 높고, 인도의 구석 한 켠을 살짝 채우는 정도의 두께에,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와 꽃잎에 닿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오랫동안 오고가며 저 나무는 더 자라겠지, 더 커지겠지 했건만 수 년째 그 크기가 그대로다. 사람으로 치면 8살, 9살쯤이나 될까 싶은 어린이 벚꽃나무다.

작지만 이 나무가 피워내는 꽃과 잎은 제법 그럴싸하다. "작은 나무가 맵다" 인가? 매 해 봄만 되면 유난히도 하얀데다 꽃잎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어여쁜 벚꽃들이 꽃망울을 야무지게 많이도 피워낸다. 크기는 작은 나무이나 뻗어나간 가지들이 잘잘하게 풍성한 편이라, 꽃이 만개할 때면 그 외양이 무척이나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나무등걸 반, 꽃가지 반의 아름다운 꽃나무다.

벚꽃나무가 있는 곳은 평일 아침저녁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여 복잡한 거리다. 주말에는 전철역 주변 특성상 여가와 여흥을 즐기는 행인들로 분주한 곳이다. 뜬금없어 보이는 인도 한 켠에 조용히 서 있는 작은 벚꽃나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리 만무하다. 다들 무심하게 스쳐가고 지나간다. 목적지를 향해 걷기만도 바쁠 테다.

하지만 봄, 벚꽃의 개막을 앞둔 때만큼은 이 작은 벚꽃나무도 많은 눈길과 주목을 받는다. 나무로서는 일년 중 가장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두는 시기다. 물론 추측이지만, 비단 나만 그런것이 아닐테니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저리도 꽃들이 앙증맞고도 소담하니 화사한데 그 누가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회색 건물과 어지러운 간판들, 시끄럽게 오가는 차들이 가득한 칙칙한 도로의 분위기를 이렇게나 부드럽고 복스럽게 바꿔주는데 말이다.

매일 똑같이 지나가고, 주변에 관심없이 땅만 보고 걷는 길, 하지만 이 작은 벚꽃나무가 있어 나는 걸음이 즐겁다. 오가며 제법 오래 보았다고 애착이 생긴 것도 같다. 애정어린 그만의 이름도 붙여주고 싶다. 나무의 애칭은 여전히 고민중이다. 내 마음속에 정해질 때까지는 그냥 "전철역 앞 작고 귀여운 벚꽃나무"로 불러야겠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제제가 밍기뉴를 생각하듯, 나도 작은 벚꽃나무에 은근하게 정이 들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늘 그렇듯 작은 벚꽃나무와 마주쳤다. 이번 해는 벚꽃 개화가 좀 일렀다는데, 이 나무에도 며칠새 벚꽃들이 더 환하게 잔뜩 많이도 피어났다. 작은 벚꽃나무가 햇볕을 잘 받는 양지에 서 있어서 꽃이 주변보다 좀 더 빨리 피어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매 년 이맘때면 이 아이의 꽃사진을 꼭 남기고 있는 나이기에 잠시 서서 벚꽃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마음먹고 꽃구경을 가거나 제대로 된 봄꽃 축제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내게는 전철역 앞 벚꽃나무가 늘 그 자리에 있어줘서 안도가 된다. 작아서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벚꽃나무. 봄 뿐만 아니라 매일의 내 일상의 시작과 끝을 화사하게 응원해주는 것 같아 점점 더 사랑스럽다. 작은 벚꽃나무야 언제까지나 싱싱하고 건강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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