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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산책

by 맘씨 posted Sep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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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뗄 것이 있어 토요일 오전 혼자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아산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눈감고도 갈 정도로 익숙하다. 힘든 기억이 많은 곳이라 나에게는 슬픈 장소이지만 가는 길의 풍경만큼은 제법 아름다워서 매번 뭉클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긴 오솔길의 녹음이 무성하고, 파란 가을하늘과 주변의 억새가 잘 어울린다. 시원하게 뻗어 흐르는 성내천과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내 마음을 차분히 해 준다. 주변으로 아파트숲과 빌딩숲이 가득한 곳이지만 주변 자연의 초록빛과 함께 어우러지니 어딜 보나 호젓하고 상쾌하다. 

재빨리 서관으로 들어가 서류를 떼고 나왔다. 병원 안에서 걸린 시간은 고작 7분 남짓.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편리함을 다시금 느낀다. 밖으로 나오니 점심때로 향하는 기온은 더 높아졌고 하늘은 더 새파래져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부드러워서, 도저히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간 운동도 거의 안했겠다, 오랜만에 갖는 나만의 시간이겠다, 여러모로 오늘은 가을을 맘껏 만끽하며 도보로 옛 추억탐방을 하는 그런 날인 것이다. 택시도 지하철도 필요없고 굳이 타지 않을 생각이다. 익숙한 곳이니 눈에 담으며 쭉 걸어보자. 아름다운 날이니 햇볕과 바람을 양껏 쐬어보자.

성내천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나와 잠실나루역을 지났다. 이어 장미아파트와 장미상가쪽으로 쭉 걸었다. 주변 많은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고 높다랗게 올라가 있지만 장미상가는 옛 기억 그대로 똑같아서 반갑다. 오랫동안 다녔던 피아노 학원도 더듬어 보고 가족끼리 외식하던 가게도 떠올려 본다. 

곧이어 잠실중학교를 지난다. 아빠가 근무하셨던 곳이고 일요일마다 토익텝스 감독관을 자주 하셨다. 독서실에서 주말 공부를 하다가 끝나는 아빠 시간에 맞춰 중학교 앞으로 가서 맛난 점심을 얻어먹고 다시 독서실로 복귀하곤 했었다. 그 때의 낡았던 식당들은 다 없어져 있고 대신 깔끔한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하다. 

조금 더 걸으면 17년을 살았던 옛날 우리 집 아파트가 보인다. 단지의 외양이 어쩌면 나 어릴적 때랑 저렇게 똑같을까. 기왕 걷는김에 단지 안에도 들어가보고, 느리게 이곳저곳을 걷는다. 

살던 집 근처에도 가보고, 자주 들르던 샛길과 공원에도 눈도장을 찍는다. 여전히 녹음이 가득한 옛 우리동네가 정겹고 친숙하다. 나는 나이들고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왜 이 안은 똑같은건지 이상한 마음이 든다. 

다시 걸음을 옮겨 중앙상가에 가보고, 반주 봉사를 하던 성당도 들른다. 땡볕을 받으며 잠실새내역 번화가로도 향해본다. 날이 좋고 길도 탁 트여 걷는 재미가 있다. 좋아하던 해주냉면도 먹고, 눈여겨봤던 노천까페에서 아이스티도 한 잔 한다. 추억놀이가 즐겁다. 걸음도 익숙하게 자연스럽고, 어딜 봐도 예전의 기억이 가득한 곳들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손목시계가 오늘 만오천보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마음이 이상하게 몽글거리고 아쉬움과 후련함이 뒤섞이는 묘한 느낌이 든다. 

변한 곳은 새롭게 다가오고 그대로인 곳은 여전하다. 이런 식으로 나도 계속 나이들어 가겠지 싶지만.. 오늘의 익숙한 장소들, 걷기 좋았던 환한 날씨, 완연한 가을의 냄새와 공기가 나를 잠시 20년 전 소녀시절로 데려다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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