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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꽃다발과 조화

by 맘씨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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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지난 주 화요일에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ZOOM으로 하려나 싶었는데, 6학년 모두 등교해 각 반 교실에 모여 방송으로 식을 진행한다고 했다. 다만 학부모 교실 출입이 금지되고 행사 후 운동장 입장 및 사진촬영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쉬움은 좀 있지만 학교 안에서 얼굴 보며 축하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안도했다.

졸업식 참석을 위한 휴가를 내뒀기에 전날인 월요일에는 늦게까지의 야근이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에는 중요한 식사 미팅도 있었다. 이래저래 졸업식 꽃다발을 사 갈 시간적 여유는 없어 보였다. 회사가 남대문시장에서 멀지 않아 꽃을 살 일이 있을때마다 꽃시장에 들러 저렴하고 다양하게 꽃을 구입했기에 다른 꽃집은 내 선택지에 없었다. 아이 초등학교 주변에 꽃집이 몇 군데 있어 둘러보긴 했지만 가격도 비싸고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꽃에 관심없는 사람은 많겠지만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꽃에 조예가 깊진 않으나 나 역시 꽃을 사랑하고 꽃무늬도 무척 선호한다. 꽃들 중에서는 프리지아와 안개꽃, 그리고 백합을 특히 좋아하는데, 프리지아는 그 싱그럽고 수줍은 듯한 향이 마음에 쏙 드는데다 생기있게 쨍한 노란 빛깔이 언제나 내 마음을 소녀처럼 설레이게 한다. 

안개꽃은 엄마가 좋아하셔서 아빠가 엄마께 다발로 자주 사다주셨다. 흰 안개꽃이다. 무수히 많은 잔가지가 갈라져 눈송이 눈꽃처럼 흐드러져 피어난 작은 꽃들. 장미나 카네이션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 꽃의 이미지가 크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청초하고 송이송이 아름답다.

백합은 특별한 날에만 마음 먹고 구입하는 꽃이다. 프리지아와는 사뭇 다른 깊고 진한 향에, 도드라지는 흰 꽃봉오리와 우아한 초록 잎사귀들의 완벽한 조화가 사랑스럽다. 꽃말인 순결, 순수한 사랑, 영원한 사랑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존재 같다. 집에 고양이들이 있어 관상용으로 자주 놓아두지는 못하지만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꽃이다. 

내가 가장 많은 꽃을 받았던 건 대학교를 졸업하던 때였다. 8월 초인 여름에 졸업했는데, 학부 동기들 중 가장 이른 졸업이었기에 관심도 축하도 많이 받았다. 그 날 받은 꽃송이와 꽃다발로 아빠의 차 뒷자석과 트렁크가 꽉 찼던 모습, 집에 도착해 하나하나 정리하고 꽃병에 꽂아 말리고 하며 즐거워했던 시간. 집 안을 가득하게 채우던 꽃들의 향기에 마음 즐거우면서도 이제 진정한 사회인이구나를 곰씹었던 14년 전의 나. 졸업의 기억은 그렇게 수많은 꽃들과 함께였다. 

세월은 지나 이제 나의 아이가 첫 정규교육과정, 초등학교 졸업식을 맞았다. 졸업식에서의 환한 웃음, 아쉬움, 후련함 그 모두와 함께할 꽃다발만큼은 좋아하는 꽃으로 직접 어여쁘게 꾸며주고도 싶다. 하지만 여건이 안되는데다 솜씨도 부족한 엄마로서는 최대한 알아보고 조사해서, 눈으로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을 사서 안겨줄 수밖에. 

그래서 주문한 백합 꽃다발은 조화다. 놀라울 정도로 빨리, 게다가 새벽에 도착하는 총알 배송을 통해 구입한 꽃이다. 백합의 아찔한 향기는 없지만, 옅은 비누의 향이 뿜어나온다. 꽃잎도 가지도 잎사귀들도 어쩜 이렇게 실제와 똑같이 만들었나 싶다. 포장까지 심플하면서도 근사하다. 가짜인데 가짜같지 않고,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 

졸업식에 가 아이에게 백합 꽃다발을 안겨준 후 이런저런 사진을 찍었다. 그래, 순수하게 사진을 위한 꽃이므로, 부랴부랴 주문한 이 조화 꽃다발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멋쩍으면서도 즐거운 표정, 풍성하니 예쁜 꽃, 그날따라 유난히 맑은 햇볕이 삼박자로 잘 어우러져 멋진 사진들이 나온다. 합세한 주변 친구들의 색색깔 다채로운 꽃다발들도 눈을 즐겁게 한다. 

이제 이 풍성하고 흰 백합 꽃다발은 늘 변치않는 모습으로 남아 우리 집 실내를 환히 빛내줄 것이다. 지지도 시들지도 않는다는 건 조화 꽃의 비교불가한 장점이겠다. 다음 번 둘째아이의 졸업식 때는 꼭 남대문 시장에 미리 들러서 노란 프리지아와 눈안개꽃의 싱싱한 향기를 안겨줘야지. 나를 닮아 프리지아와 안개꽃이 제일 예쁘다는 딸이므로.

운동장 졸업사진 속, 백합꽃을 들고 웃는 훌쩍 큰 아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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