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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의 고양이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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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모두 중성화가 된 암컷으로 한 마리는 8살, 한 마리는 1살이다. 나이차가 꽤 나지만 어영부영 잘 지내는 두 고양이들, 머무는 곳이 아파트인지라 함께 뛰어노는 정원이나 마당 공간은 없다. 물론 현관 문 밖으로 나가는 일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저 가끔 거실을 우다다다 달리거나, 지정 장소에서 웅크려 지내거나, 집 구석구석 자기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 앉아있곤 하는 녀석들이다. 고양이들의 삶이란 볼수록 나른하고 호젓하다. 큰 변화도 사건도 없이 그들의 하루하루는 차분하니 얌전하게 지나간다.

항시 사뿐사뿐 우아하게 조용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듯 없는 듯 평화로이 생활하는 고양이는 오랜 세월 사람과 함께 하면서도 자기 공간 밖을 잘 벗어나지 않는 대표적인 영역 동물이다. 우리 고양이들도 집 밖의 장소에는 관심없이 이렇게 평생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작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인다. 1살 고양이의 이야기다. 싸락눈처럼 하얀 털에 작고 날렵한 체형을 가진, 밤색과 푸른 색이 섞인 커다란 눈망울의 이 녀석은 왜인지 요새 부쩍 바깥 세상이 신기해지는 모양이다. 

늦봄부터 날씨가 더워지더니 초여름 기온과 습도가 심상찮다. 덥고 끕끕한 와중에 에어컨 바람은 선호하지 않으니 거실 베란다 창문을 자주 열어둔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들어오고, 촘촘한 방충망 사이로는 아파트 앞 전경이 훤히 펼쳐보인다. 우거진 녹음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드문드문 하얀 뭉게구름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음을 알려준다. 바로 그 풍경 앞에서, 1살 고양이는 요즈음 하루 얼마간의 시간을 베란다에 자리잡고 앉아 먼 곳에 시선을 둔 채 하염없이 앞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얘가 더워서 그런가 싶었다. 시작되는 여름의 습함과 무더위를 피할 곳을 찾는 건가 했다. 하지만 8살 고양이는 변함없이 본래 있던 자리만을 고집하고 있는데다 베란다 앞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연령차가 있긴 하나 고양이로서의 대체적인 생활 습관이나 몸으로 느끼는 기온은 비슷할 터인데, 그렇다면 1살 고양이는 단지 집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져서, 호기심이 나서, 바깥이 보고싶어서 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내 나름의 소결이 나오게 됐다.

집에서 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즈음 거실 마루로 나가니 역시나 1살 고양이가 베란다 코앞에 우두커니 앉아 경치를 감상 중이다. 나도 슬쩍 쇼파에 몸을 기댔다. 자그마한 몸집의 고양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신기하고 기분이 묘했다. 저렇게 꼼짝도 안하고 밖을 쳐다보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자기 앞을 응시하는 걸까. 이 계절을 만끽하는 걸까. 묘생에 대한 사색에라도 잠겨 있는 중인가. 혹시 자유롭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픈 마음은 아닐까? 물론 단순하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망중한일수도 있지만.

궁금해진다고 고양이에게 다가가 기척을 내면 일은 그르쳐지고 만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데다 어느정도는 쌀쌀맞은 동물이다. 사람에게 곁을 내주는 듯 하다가도 다시금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 훌쩍 떠나는 존재다. 그 풍경 나도 같이 보자 하며 옆에서 촐싹대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있기 십상이다. 그저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함께 창 밖을 바라보는 수밖에.

우리는 그렇게 조금 떨어져 여름의 창 밖을 한동안 가만히 응시했다. 베란다의 고양이는 부드럽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작은 미동조차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요즘 화제라는 고양이 통번역 어플까지 사용하거나 하진 않으련다. 성정이 자유롭고 도도한데다 요새들어 호기심과 동경까지 가득해진, 베란다를 사랑하게 된 1살 고양이는,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애착 자리를 잘 찾아낸 셈이다. 언제까지나 아이처럼 장난만 칠 것 같던 이 녀석이 이번 여름의 문턱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는 건 확실하다. 

되려 적당한 거리를 둘 적에 은근히 더 다가와주는 고양이는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생명체라기보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존재 같다. 길들이려는 욕심을 놓을 때 더 친밀해질 수 있다는 걸 고양이를 통해 배웠으니, 이는 인간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닐까? 비록 앉아있는 거리는 조금 둘지언정, 이 여름 함께 시원한 바람 맞으며 풍경 나눌 아름다운 존재가 있어 기쁘다. 큰 욕심 없이, 베란다의 고양이와 함께 변해가는 계절을 오래도록 만끽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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