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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와 청국장

by 맘씨 posted Sep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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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꼽자면 된장찌개와 청국장이다. 둘 중 굳이 비교우위를 따지자면 쿰쿰 담백한 청국장이 아주 조금 더 높다. 어릴 적 울엄마가 나물반찬과 함께 식구들에게 제일 많이 만들어 주신 음식이기도 하고, 내 체질 내 몸에 무엇보다도 콩과 두부가 가장 잘 맞는다는 걸 잘 알기에, 더 자주 찾아먹고 많이 해먹고 한다. 

나는 잠실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집에서 멀지 않은 새마을시장에 청국장을 기막히게 맛있게 하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집에서 엄마가 끓여주는 것도 맛났지만, 머리 크고서는 괜히 친구나 동생이랑 주말 외출한답시고 시장가서 그 곳 청국장찌개 사먹기를 즐겨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건전한 외출 취미다.. 식당 아주머니가 좀 까칠하시긴 했지만 그 맛만큼은 정말 내 입에 꼭 맞았었다. 

독일 1년 살 때는 청국장을 못 먹어서 너무 아쉬웠다. 된장은 아시아마트에서 시판 것을 구입해 소량으로 조금씩 끓여먹곤 했지만 청국장은 엄두도 못 낼 음식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파독 간호사분들은 정원이나 베란다에서 콩을 직접 띄워 냄새가 적은 청국장이며 된장을 직접 만들어 드신다고 하더라. 십수 년을 이역만리 독일에서 살아간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으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회사 근처의 맛난 된장찌개, 청국장집도 진즉에 뚫어놓고 점심 집밥 그리울 때면 찾아간다. 서울 도심의 청국장 맛집은 내 사무실에서 15분 정도 걸어야 도착하지만 코로나 이전엔 1-2주에 한 번은 꼭 가서 먹고 올 정도였다. 식권을 내고 사먹는 주변 구내식당들의 메뉴에 된장찌개와 청국장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발길을 잘 안하게 되었다. 가끔 늦은 야근을 하고 나서는 근처의 백반집에서 뜨끈한 된장국밥을 후루룩 먹고나서 귀가하곤 했다.

우리 애들도 엄마가 된장 청국장 매니아인 걸 너무 잘 안다. 다행히 애들도 일찍부터 자연스레 잘 먹었고 아직까지는 전혀 물려하지 않는다. 남편이야 뭐, 한식파이니 너무 좋아해준다, 단지 그 날 끓인 것만 드셔서 그렇지.. 이렇듯 호응 높은 식구들 덕분에 계절 불문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된장 청국장 냄비 끓이는 보글보글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곳, 바로 우리 집이다. 

된장찌개와 청국장에는 요리하는 내 나름의 변화를 줄 수 있어서 더 좋다. 진한 멸치육수나 쌀뜨물에 맛난 된장과 청국장만 베이스가 되면 된다. 두부, 양파, 버섯, 애호박, 무청시래기, 감자부터 배추, 고추, 대파, 호박잎, 냉이, 아욱, 부추까지 모두 다 잘 어울린다. 때로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기름진 풍미도 살리고, 바지락이나 소라, 새우살을 넣어 바다의 향기도 내본다. 청국장에는 다진마늘과 송송 썬 신김치를 듬뿍 넣어 되직하게 끓여낼 때도 많다. 이렇게나 많은 재료들을 우직하게 모두 담아 구수하게 어우러 품어주는 찌개가 또 있을까. 

정성껏 한 솥 끓여낸 된장찌개나 청국장 하나 있으면 애들 밥 두 그릇도 뚝딱하게 해주고, 반찬 없을 때의 비빔밥에도 간이 기가 막히며, 남편과의 밤술 타임 속 풀어주는 귀한 안주도 된다. 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 음식인지. 소설가 박완서님이 "노란집" 수필에서 쓰신, 속 부대끼는 양식을 먹고 온 날엔 슬그머니 부엌에 들러 무청시래기 된장으로 지져낸 뚝배기를 뒤적거린다는 그 글귀. 나는 읽으며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 모른다. 

퇴근길, 오늘의 저녁메뉴를 머리 바쁘게 이리저리 굴려본다. 와중에 역시나 된장 청국장은 빠질 수 없다. 된장에 찰떡궁합인 시래기가 풍성하게 있고, 버섯과 애호박도 며칠 전 넉넉하게 장 봐뒀다. 두부는 어제 다 먹어 없으니 집 앞 마트에서 얼른 집어가야지. 냉동실에 차돌박이도 있으니 듬뿍 넣고, 대파랑 고추 잘잘하게 썰어 찌개 뜸들일 때 듬뿍 올려야겠다.

생각하다보니 내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스물쩍 번진다. 벌써부터 쿰쿰 구수한 우리 집 부엌의 찌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빨라진다. 영원한 내 힐링 푸드이자 우리 집 일상의 식탁 메뉴. 된장 청국장만 생각하면 이리 지친 하루의 힘든 귀갓길도 금세 침고이는 진한 행복과 뜨뜻한 기다림의 순간이 되고 마니.. 진짜로 이제 더 이상의 외국살이는 못할 것 같아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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