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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목

by 맘씨 posted Sep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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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나는 일자목으로 고생을 해왔다. 목 뼈의 정상적인 C자형 커브 대신 일자로 굳어지는 변형된 목뼈 상태인 일자목이 되면 목 주변 근육이 굳고 단단해져 통증이 생기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나로서는 초등 때부터의 나쁜 시력과 웅크리고 하던 독서습관, 바르지 못했던 자세가 쭉 이어지면서 생겨난 증후군이다. 취직을 하고 일을 하면서도 개선되지 않아 더 굳어져버린, 순전히 내 탓의 목 결과물.

목이 남들보다 긴 점도 일자목을 강화시키는 데에 일조를 했다. 나는 왜 하필이면 목만 길게 태어난 것인지, 눈이 더 크거나, 손발이 예쁘거나, 입술이 남들보다 붉거나 등의 얼마나 여러 미적 신체조건이 많은데 왜 하필 목만 길까 하며 아쉬워한 적도 많다. 별명 중 하나가 기린이었던 내게 남편은 "모가지가 길어 슬픈 마눌이여" 라며 노천명의 사슴 시를 변형해 고생하는 나를 웃겨주곤 했다. 

통증은 7년 전쯤 최고조에 달했었다. 퇴근할 때쯤이면 목덜미와 어깨가 뻐근하고 너무 아팠다. 근육이 뭉쳐서 두통까지 올라왔고 팔이 저려서 아팠으며 심할 때는 눈까지 충혈되곤 했다. 기진맥진해 침대에 누우면 머리가 어질어질한 증상까지 나타났으니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안마기를 구입하고, 카이로프락틱 교정사도 찾아가고, 마사지도 받고, 목침을 구해 잠잘 때 쓰는 등 나름의 비용과 노력을 다했다. 

물론 가장 신경쓴 것은 바른 자세였다. 평상시의 자세가 나쁘다면 치료도 약도 소용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자세가 곧바른 남편과 딸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등과 허리 자세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지내니 내 목의 각도도 상태도 점차 좋아졌다. 몸선도 느끼기에 더 예뻐지는 것 같았고 눈도 맑아져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목과 어깨, 머리의 통증이 사라지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30대 초반에 그렇게 내 목과 자세를 교정했으니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았다고 안도한다. 목은 아니었지만 허리가 좋지 않아 일평생 고생하셨던 아빠 모습이 생생하고, 주변 가족들과 지인들 중에도 디스크 등으로 애를 먹는 분들이 많다. 역시 유경험자로서 몸의 바른 각도와 자세 관리를 공유하고 전파하고 싶어진다. 경험해봐서 얼마나 아픈건지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 피는 숨길 수 없는 것일까. 내 목만큼은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았으면 했건만 첫째와 둘째 모두 목이 긴 편이다. 특히 아들내미는 "모가지가 길어 슬픈 소년" 의 말이 딱 들어맞는 모양새다. 한창 뼈가 자라는 시기라 그런지 몸 전체가 빼빼한데다 요새는 등마저 살짝 구부정하니, 흡사 비쩍 마른 목 긴 거북이를 연상케 한다. 

함께 정형외과도 다녀오고, 마사지도 해주고, 엄마의 일화들도 알려주며 아이에게 자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잔소리가 섞인 걱정과 염려, 어느정도의 협박성 문구도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그러나 긴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걸어가는 큰애의 모가지는 여전히 일자로 삐죽이 뻗어 묘한 거북이의 실루엣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어쩜 저렇게 나 초등학생 때와 꼭 같은지.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선 아이에게 아무리 알려줘도 크게 와닿지가 않는 것 같다. 내가 낳고, 나를 닮은 아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엄마처럼 일자목으로 실제 고생을 해봐야 바른 자세가 나에게 필요하구나, 깨닫고 고쳐나가지 않을까 싶다. 단지 그 깨달음의 시기가 엄마보다는 빨리 이르게 왔으면 하는 바람일 뿐. 

오늘도 이렇게 신기한 유전의 힘을 다시한번 느끼며, 내 어릴적 모습이 투영된 아이의 목과 등을 또 한번 바라보게 된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일자목. 아들아 너는 엄마보다 현명하게 피해가고 극복해나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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