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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팩

by 맘씨 posted Sep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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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어느 하루 전곡항에 혼자 다녀왔다. 선장님과 꽤 멀리 입파도까지 요트를 몰고 나갔다 왔단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얼마나 햇볕을 맞은건지, 아침에 떠나 저녁에 돌아와 마주한 얼굴과 목, 팔뚝, 종아리가 모두 새빨갛게 익어있다. 

피부가 하얀 남편은 햇볕에 그을려도 벌겋게 변했다가 다시 원상회복이 되는 참으로 신기한 체질이다. 어릴 적부터 가무잡잡한 편인 나는 남편의 흰 피부가 종종 부러웠는데, 다행인건지 아이들 역시 남편의 피부색을 닮아 볕을 오래 쬐어도 금세 얼굴이 환하게 돌아오곤 한다.

그런데 이번 남편의 탄 얼굴은 회복이 쉬이 되지 않을 듯 그 상태가 자못 심각해 보였다. 혹시 마눌처럼 보기좋게 그을린 피부를 원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만.. 혹시나 익은 부분이 따끔거리거나 아플까 싶기도 해 걱정이 되어 묻는다. 

"감자팩이라도 해 줄까요?" 

그러자 즉각 돌아오는 대답.

"그래요. 지금 바로 해주면 좋겠네요."

역시 하얀 피부에 은근한 자부심이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망설임 없는 대답에서 느껴지는 왠지모를 조바심에 나도 최선의 서비스로 보답하기로 한다. 냉장고에 차게 보관해두던 감자 한 알을 꺼내 깨끗하게 씻고 껍질째로 강판에 벅벅 간다. 큰 감자 하나를 갈면 큰애, 작은애 얼굴 한 번씩 해주기에 딱 알맞으니, 중간크기 감자면 남편 얼굴에 적당하리라.

수건을 깔고 남편을 뉘어준다. 고분고분하게 누워 두 눈을 꼭 감고있는 얼굴이 왠지 귀엽기까지 하다. 강판의 감자를 조금씩 덜어 얼굴에 살살 올려주니 생각보다 차갑다며 중얼거리다가 금세 쌔근거리며 잠에 빠져든 모양이다.

팩을 해주다보니 남편 얼굴골격이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코가 높고 하관이 강하며 입술이 길고 턱 밑이 쑥 들어간 얼굴이다. 하관이 갸름하고 입술이 도톰한 나와는 많이 다르다. 큰애는 내 계란형 얼굴과 남편의 쑥 들어간 턱을 닮았고, 둘째는 남편의 얼굴형과 입매를 똑 닮았다.

그런데 아뿔싸, 중자 감자 하나가 남편 얼굴에 조금 모자란다. 이마와 코, 두 뺨을 덮고 나니 턱에 올릴 팩거리가 없다. 임시방편으로 이 부분에서 조금, 저 부분에서 조금 떼와 얼추 균형을 맞춘다. 항상 나와 애들만 팩 하느라 몰랐네, 남편은 앞으로 대자 감자 한 개 다 쓰는 걸로.

다음날 아침, 기상한 남편의 얼굴은 다시 예전 그대로의 피부색으로 돌아가 있다. 역시 내가 해 준 천연 감자팩의 효과인가 싶다가도, 회복력 있는 저 하얀 피부가 몹시 부러워짐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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