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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견뎌낸 할머니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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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와 점심시간 통화를 했다. 간병사분께 전화를 드리면 누워계신 할머니 귀에 대어주시고 잠깐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이마저도 매번 성공적이지는 않다. 간병사분이 바뀌기도 하거니와 여러 노인 분들을 한 분이 함께 돌보고 계셔서 항상 통화를 하는 것이 힘들 때가 많다. 세네 번 전화를 하면 한 번 가능한 정도다. 

할머니는 지난 달 큰 수술을 받으셨다. 횡행결장의 암부위 25cm 가량을 떼어내는 2시간 가량의 대수술이었다. 보훈병원 중환자실에 내내 계시다가 얼마 전 다시 요양병동으로 오신 후에는 수혈과 영양주사를 계속 받으며 지내셨다. 다행히 심각한 시기는 지나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고 계시다니 안도가 된다. 할머니는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해내셨다. 

투병은 힘들고 괴롭다. 무너지고 약해지는 본인도,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가족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부모님 두 분의 암투병을 곁에서 보면서, 나는 인간이 왜 저렇게까지 고통을 받고 극심하게 아프다가 결국 세상을 등져야 하는지 그 날카롭기만 한 현실이 절망스러웠다. 현대 의학으로도 투병의 고통이 그다지 완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자 병환도, 늙어감으로 인한 노환도 모두 무서워졌다. 

결국에는 정신력의 싸움일까. 예전 간병을 하며 지낸 병원에서의 기억들을 되살려보면 안타깝고 슬픈 감정 뿐이다. 보다 덜 아프고, 좀 더 즐거운 투병의 과정이란 극히 드물 것 같다. 나는 늙어 병상에 누워서도 마인드컨트롤이 잘 되는 긍정적이고 성실한 환자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자신은 없다. 그저 내 몸 건강관리를 잘 하며 다가올 노년을 대비하는 수밖에.

오랜만의 할머니와의 대화는 따뜻하고 다정했다. 말씀이 힘드신 할머니라 1분 정도의 아주 짧은 통화일 뿐이었지만, 이런저런 나의 말에 대답과 응대를 해주시는 할머니의 어조와 음성이 인자하고 좋았다. 손녀는 신이 나서 근황도 이야기하고, 칭찬받고 싶은 일도 크게 말씀드렸다. 할머니의 잘했네 소리에 기분이 으쓱해졌지만, 성치않은 목소리로 거듭 어디인지, 밥은 먹었는지 물어오시는 할머니가 보고싶어져 눈물이 났다. 

할머니에게 나는 영원한 어린 손녀다. 더 오래도록, 덜 아프고 조금 더 편안히 우리 곁에 계실 수는 없을까?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그토록 큰 수술을 견뎌내고 이겨낸 할머니가 존경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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