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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경채 기르기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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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구조를 말해보자면 베란다를 트지 않고 널찍하게 놓아두는, 예전 방식의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다. 공간 활용도 할 겸, 부부는 최근 몇 년간 집 베란다를 다양한 식물 키우는 텃밭의 용도로 사용중이다. 그동안 작물로 스쳐지나간 채소의 종류가 제법 되는데, 파와 상추같은 대중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바질 및 허브, 고사리, 치커리, 쑥갓까지 열심히 키워본 경험이 있다. 특히 남편은 예전부터 풀 기르기에 제법 진지한 취미가 있었고, 야심차게 주말농장에도 도전했다가 망해버린 이후에는 베란다에서 자신의 못다한 꿈을 더 원없이 펼치는 중이다. 

나는 채소나 꽃, 화분 키우기에 젬병인 식물 마이너스의 손이다. 내 손 닿아 자란 것들은 늘상 오래가질 못했다. 청소년 시절 낑깡을 정성들여 기른 적이 있었다. 열심히 햇볕 쏘여주고 물 주니 토독토독 새순을 내던 모습에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알고보니 모두 잡초였다는 사실. 아무래도 나는 울 할머니의 세심한 금손을 닮지 못했나 보다. 나중에는 부부 둘만 시골에서 집 짓고 밭 가꾸며 사는 게 꿈인데, 이런 심각한 꽝손이라서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우리집 베란다 텃밭은 나름대로 성황을 이뤘다. 쑥쑥 올라오는 파로 핫하다는 파테크도 해보고, 여리여리 곱게 잘 자란 상추도 곧잘 뜯어먹으며 끼니에 풍성히 보탬을 했다. 허브와 바질도 잘 자라서 차에도 우려먹고 피자 위에도 올려먹었다. 쑥갓이며 치커리도 고기 구워 쌈 싸먹을 때 톡톡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 와중 물론 실패한 채소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고사리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손 안가는 작물이라는 말에 남편이 잔뜩 사왔었는데 한 달만에 완전히 끝장나고 말았다. 

 

그런 우리 부부가 요새 집중하고 있는, LED등을 이용한 식물 재배 및 수경재배는 남편의 독학 공부가 꽤나 오래 된 분야다. 남편은 관련 책도 많이 찾아읽고 동영상 강의도 꾸준하게 들으며, 뼈아픈 주말농장에의 실패를 기필코 만회한다는 투지를 보였다. 한동안 꼭두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또 퇴근하자마자 베란다의 재배 장비와 상태 점검에 아주 열심인 모습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기를 품목을 청경채로 결정했고, 최근 몇 달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요즘의 베란다 공간은 한움큼씩 올라와 싱싱함을 뽐내는 푸릇푸릇 청경채로 가득해졌다. 남편의 의지가 그대로 구현된, 이번 여름 우리집 베란다 텃밭의 최고 히트 사업이다. 밑동만 남기고 뜯거나 가위로 싹둑 잘라먹어도 계속 다시 올라오는 놀라운 생명력의 청경채는 단맛도 쓴맛도 신맛도 없이 심플 담백한 채소이지만 다른 재료나 기름과 어울릴 때 멋진 조화를 이룬다. 돼지고기요리, 소고기요리, 누룽지탕, 두부요리는 물론 각종 굴소스 야채볶음이나 여러 국수 고명에도 어울린다. 물론 청경채만 잘잘이 무쳐도, 매운 겉절이를 하거나 기름에만 잘 볶아내도 밥 한 공기 뚝딱하게 정말 맛있다.

토요일인 오늘, 아침으로는 살짝 데친 청경채 올린 잔치국수를, 점심으로는 찌개백반에 청경채 버섯볶음을, 저녁으로는 재운 고기에 청경채를 듬뿍 넣은 볶음 요리를 해먹었다. 그야말로 청경채 삼시세끼 밥상이다. 원래부터 좋아하는 채소이긴 하지만 요새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채소라는 생각이 드는 건, 풍성하게 자라주고 있는 눈 앞의 진연둣빛 청경채들이 너무 이뻐보이는데다 잘 자라주는 게 기특해서인 마음도 있을 것이다. 

출출해질 긴긴 여름밤, 오늘의 주말 야식으로는 골뱅이 청경채무침을 결정해 놓았다. 숙성해둔 매콤새콤한 양념장에 쫄깃한 골뱅이와 냉장고의 각종 채소들, 아삭아삭한 청경채 크게 한 움큼 잘 섞고, 소면 잔뜩 삶아 들기름에 비벼서 한껏 얹어먹으련다. 살짝 불린 황태채도 함께 집어먹고, 야채가 부족해지면 고민 없이 베란다의 청경채 계속 더 뜯어다 올리면 된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이번 여름 베란다 텃밭이 잘 자란 청경채로 성황을 이루었으니, 훗날의 우리 귀농에 조금 자신감을 가져도 되려나? 물론 남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한거라 아내는 그저 감탄하며 열심히 뜯어먹고 있을 뿐이지만, 이번 작물 추천만큼은 내가 했다는 생색내기용 자부심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더불어 청경채 기르기를 주변의 많은 이웃들에도 추천하고 싶다. 무서운 코로나 확산세와 집합금지로 어쩔 수 없는 집콕생활이 한동안 지속될 요즘, 집 안의 풍성한 청경채 텃밭이 안겨주는 뿌듯함과 기쁨은 상상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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