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맘씨톡톡

사라진 떡볶이집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즐겨 찾던 떡볶이집이 사라졌다.

전철역 근처 자리하던 그 떡볶이집은 순대와 떡볶이, 어묵과 꼬마김밥을 팔던 작은 점포였다. 개찰구를 통과해 나오다보면 매콤한 떡볶이의 냄새와 오뎅국물의 은은한 향이 후각을 마구 자극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러 떡볶이와 순대를 포장해오곤 했다.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도 참 친절하셨는데다 가게가 깔끔하고 단정해서 안에서 사먹는 사람들도 제법 있더랬다. 

꼼꼼하게 포장된 떡볶이와 순대를 소중히 들고 집에 와 식탁에 펼치고, 순대 맛소금을 종지에 잘 담아 하나씩 콕콕 찍어먹으면 얼마나 푸짐하니 맛있던지. 분식집 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이 집 순대는 먹을 만 하다며 제법 잘 먹었고 아이들은 늘 그렇듯 떡볶이에 열광했다. 가격도 요새 브랜드 떡볶이집에 비해서는 턱없이 저렴했기에 구입에 부담이 적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가게가 사라지다니.

특히 그 집은 순대 부속 중 돼지 간이 내 입에 잘 맞아, 종종 레드와인과 함께 즐겨먹던 나의 최애 저녁간식이었다. 포장하면서 간만 많이 달라고 부탁드려 한 봉지 가득 싸온 적도 많았다. 비닐장갑 낀 손으로 주인 아저씨가 나막나막 정성스레 썰어주시던,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순대 간. 영양 만점 식감도 맛도 좋은 그 음식을 이제 어디 가서 손쉽게 사다먹을 수 있으려나.

그 가게가 사라진 후 어느날 순대가 불현듯 먹고파서 다른 떡볶이집에 갔었다. 뜨끈하게 보관되어 있던 순대가 꺼내지는 모습까진 좋았는데, 아뿔싸 주인분이 순대도 간도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담아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순대인데 칼로 좀 슥슥 썰어주시지.. 아쉬움을 안고 들고 와 집에서 먹는데 전체적으로 퍽퍽하고 별로 맛이 없는 느낌이었다. 가위질의 충격으로 맛이 반감된 것이었을지 몰라도. 

그래서 요새 떡볶이와 순대를 한동안 못 사다먹고 있다. 떡볶이는 주말에 가끔 떡국떡이나 밀떡을 사다가 집고추장으로 해먹기도 하지만 순대는 내가 도통 만들 수가 없다. 퇴근길 가까이에 포장해오기 좋은, 마음에 쏙 드는 떡볶이집이 있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었던가. 다시 생각해도 그곳이 없어진 게 아쉽고 원통하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슬쩍 보기에 장사가 매일매일 잘 되는듯 했는데, 자영업이 보기보다 훨씬 녹록치않은 분야라는 걸 새삼 느낀다.

쓰다보니 또 순대가 먹고싶어진다. 한 번은 떡볶이 국물에, 한 번은 맛소금에, 또 한 번은 쌈장에도 살짝 찍어서.. 얼마나 맛도 영양도 균형잡힌, 최고의 야식이자 안주이자 온 가족 간식이었던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던 구수하고도 고소한 그 맛. 곁에서 없어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절실히 알았다. 얼른 대체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사라져버린 맛난 그 떡볶이집이 너무도 그립다. 


  1. 나의 시절, 중랑의 봄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2. 청경채 기르기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3. 핑크빛 발레 슈즈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4. 첫 수상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5. 사랑니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6. 알타리무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7. 작은 벚꽃나무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8. 구 경성방직 사무동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9. 여의샛강생태공원의 봄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0. 허겁지겁 먹던 도시락의 추억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1. 사라진 떡볶이집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2. 변화의 시기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3. 수술을 견뎌낸 할머니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4.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후기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5. 베란다의 고양이

    Date2021.07.11 By맘씨
    Read More
  16. 영등포시장역 전시- 다음 역은 사이 숲

    Date2021.03.23 By맘씨
    Read More
  17. 춘곤증

    Date2021.03.23 By맘씨
    Read More
  18. 했더래~?

    Date2021.03.23 By맘씨
    Read More
  19. 슈뢰딩거의 밥

    Date2021.03.23 By맘씨
    Read More
  20. 경주, 12년 전 기억

    Date2021.03.23 By맘씨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