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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자가격리 - 1

by 맘씨 posted Nov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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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간에 걸친 딸의 자가격리가 끝이 난 이제, 그간의 소회를 2회에 걸쳐 일기에 남겨보기로 한다. -

얼마 전 금요일 오후 2시 반쯤이다.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긴급 공지문자가 왔다. 본교 5학년 어린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온 문자에는 학교를 일주일간 폐쇄하며, 5학년 전교생 모두 즉시 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에 나도 곧장 상부에 보고를 하고 팀에도 상황 설명을 한 후 짐을 싸서 귀가 조치를 했다.

집에 도착해 마스크를 쓰고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둘째와 도보로 길을 나섰다. 구 보건소로 향하는 길은 시원한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났으나 마음은 복잡다단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초등학교라 학생 수가 유독 적어 모두 한다리 건너 아는 사이들이다. 딸아이는 바깥에서 늘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다니지만, 등교수업을 한 날 확진자 친구와 밀접접촉을 했을 가능성 자체는 충분하다. 이런저런 고민이 내내 머리를 짓눌렀다. 

구청 안 보건소에 도착하니 야외의 선별진료소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번호표를 받고 앉아 30분쯤 기다리니 딸아이 차례가 왔다. 인적사항, 연락처, 정보공개동의를 기입해 제출하니 담당 공무원 분이 이런저런 관련 사안을 물어보신다. 함께 대답을 하고 몇 가지 확인 사항을 체크했다. 고생하시는 관련 공무원분들과 의료진들을 실제로 만나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뭉클해진다. 유인물을 수령하고, 딸은 검사 키트를 받아 줄을 서서 검사실로 들어갔다. 

보건소 주변을 둘러보니 딸의 친구들 및 아는 학부모들이 많이 보인다. 초등학교의 각 과목 선생님들부터, 아마도 확진자 어린이나 가족이 다녔을 학원, 센터의 선생님들도 여럿 검사를 대기하고 계신다. 5학년 어린이가 혼자서 코로나에 걸렸을 리는 없겠고 아마도 부모님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을텐데, 들리는 말들로는 아빠-엄마-형제자매-5학년 어린이의 순서로 전염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가족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줄을 서 있던 딸이 검사를 마치고 내 쪽으로 뛰어나왔다. 생각보다는 안 아팠지만 코 검사를 할 때는 두 눈에서 절로 눈물이 찔끔 나왔단다. 너무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종알거리는 마냥 밝은 딸애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더 착잡해진다. 음성 판정이 안 나오면 어쩌나, 혹시라도 양성이면..?! 자가격리는 오늘부터 14일간인데, 방 안에서 이제 혼자 얼마나 힘들까.. 등등의 걱정들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와 우리나라를 휩쓴지도 9개월이 되어가지만 이렇게까지 우리 가족에게 가까이 다가온 적은 없었으니까.

다시 도보로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저녁이 다 되어서 바람도 쌀쌀하고 어둑어둑한 분위기다. 늘 나는 딸과 외출을 할 때면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 팔짱을 낀 채로 꼭 붙어 다니는데 당분간은 그런 스킨십도 허용이 되질 않는다. 남처럼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걷고 있자니 속이 매우 상하고 코로나가 한층 더 원망스럽다. 

집에 돌아와 곳곳을 소독하고 정비했다. 딸은 곧장 방 안에 격리되었고 문 너머로만 소통을 하게 되었다. 아이 방에 손소독제와 물티슈, 휴지, 수건 등과 여벌 이불, 쿠션, 충전기, 책 등의 개인 물품들을 잔뜩 넣어주었다. 혼자 심심하니까 고양이 두 마리 넣어주면 안되냐고 묻는 딸애의 요청은 당연하게도 거절된다. 예전에 독감에 걸려 일주일간 방에서만 지낸 적이 있는 딸이기에 이 상황이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니고, 혼자서도 뽀작뽀작 무언가를 즐겨 하고 읽고 만드는 성향이라 조금은 안심이 된다.

딸의 격리생활 첫 날의 저녁식사 시간. 현미밥에 칼칼한 해물순두부찌개, 두툼한 달걀말이 및 오뎅볶음과 콩나물무침, 돌김과 김치를 식판에 듬뿍 담아주었다. 근거야 정확치 않지만 격리생활을 잘 이겨내는 면역에 좋을 듯 싶어 찌개에는 다진마늘을 평상시보다 더 넣어 요리를 했다. 후식으로는 블루베리와 냉동딸기, 메이플시럽을 갈아 만든 아빠표 생과일주스. 그걸 다 마시고도 또 블루베리가 당기는지 요청을 하기에 별도의 후식 식판에 한 대접을 담아주었다. 열도 없고, 저렇게 밥도 잘 먹는데 설마 양성일 리가.. 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부터는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판정 소식이 이르면 다음날 온다고 했으니, 불안감과 조바심에 발이 절로 동동 굴러졌다. 배고프다는 딸에게 아침식사로 쌀밥에 된장국, 시금치무침과 김치, 호두멸치볶음과 소시지구이를 식판에 얹어 전달했다. 마침 업무볼 것이 있어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으려니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심호흡을 하고 수신 버튼을 누르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천만 다행히도..! 딸아이는 음성 판정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확진자 어린이가 딸과 같은 반 친구라, 딸은 음성 판정임에도 14일 동안 자가격리대상자로 지정이 되었단다. 그래서 집에서 자가격리 상태로 지내다가, 격리 13일째 날 오전에 다시한번 검사를 받은 후, 그 때도 역시 음성 판정이 나오면 14일째 정오 12시에 비로소 완전하게 격리 해제가 된다는 것이다. 

격리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이런저런 지침사항을 전달받았다. 격리기간의 전담 공무원도 딸애에게 배치가 되었다. 통화를 모두 마치고 나니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그래도 음성이라니, 내 딸이 음성이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같은 반 친구이니 등교수업 중엔 알게모르게 가까이 앉거나 얘기하거나 했을건데.. 답답했을텐데도 마스크를 잘 쓰고 학교에 다녀와 준 딸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우리집 마스크 잔소리 담당이 딸내미인데, 이제 와서는 그 꼼꼼함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희소식으로 온 가족 한시름 놓은 주말이다. 하지만 딸의 격리생활은 이제 겨우 사흘 째를 향하고 있을 뿐, 열흘이라는 일자가 더 남았다. 내내 방 안에서 음식을 받아먹고, 가족들과 문자와 영상 통화로 소통하고, 온라인 학습과 독서를 하며 긴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무척 심심한지 혼자서 격리 일지와 셀프 영상도 남기는 중이라는데, 아무쪼록 크게 답답해하지 않으며 건강히 지내다가 두 번째 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이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딸의 격리생활을 지원하며 읽고 있는 책이 안종주 저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이다. K방역의 빛과 그림자, 코로나 바이러스의 실체, 감염병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내용으로 꽤나 유익하고 흥미진진하다. 책의 말미에는 효과적인 위기 소통과 코로나19바이러스의 특성을 잘 살펴서 방역 전략을 다듬고, 이제껏 우리가 잘 해온 강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되고 있다.

딸이 학교 동학년 학급에서 확진자가 나와 자가격리대상자가 된 현 우리집 상황에서, 코로나19는 언제든지 누구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은밀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을 새롭게 했다. 세계 곳곳과 우리나라 각지에서 확진자와 희생자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와 위기 속에서, 나도 우리 가족도 좀더 일상적이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감염 예방 철칙을 준수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일요일 점심, 엄마표 손수제비에 잘 익은 배추김치 한 그릇을 방 안에서 홀로 뚝딱한 딸이 후식으로 과일과 주스를 먹고싶다고 문자를 보내온다. 답답하게 갇혀 있음에도 평소보다도 더욱 왕성한 식욕을 뽐내고 있는 우리 딸. 딸의 안전하고 건강한 자가격리생활을 위해서, 앞으로의 열흘간 영양 식단을 짜놓아볼까 싶다. 딸아 힘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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