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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요양병원

by 맘씨 posted Jan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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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1932년생인 할머니는 여리여리한 체구에 단단한 손길, 절도있는 성품을 가진 분이다. 언제나 꼿꼿하고 평생 빈틈이 없는 분이었다. 맏손녀인 내가 할머니를 보며 살아가면서, 그 철저함이란 할머니가 장녀로서, 큰며느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단 걸 깨달았다.

어린 시절엔 할머니가 무섭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한없이 인자하셨는데다 술 한 잔 들어가면 그 착한 성품이 더더욱 풀어지셔서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런데 할머니는 기고 아니고가 뚜렷하셨고 그래서 더 조심했다. 시집살이를 몇 년 했었던 울엄마는 아마 꽤 많이 힘들었을거다.

손녀의 특권으로 어릴적부터 할머니의 손과 무릎을 독점했던 나는 어쩌면 엄마의 고생을 제대로 몰랐을 거다. 기억에 초등 4-5학년 때까지도 부모님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훨씬 더 좋아했었다. 아빠가 할머니를 많이 닮았는데다 내가 아빠와 똑닮아 더 귀여워해 주셨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할머니가 가장 아끼던 아들의 맏딸이자 참 예뻐하던 영특한 손녀였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결혼할 남편을 선보이는 자리에 할머니는 모든 식구 가족을 불러들이셨고 온갖 진수성찬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준비하셨다. 솔직함과 친근한 유머로 첫 눈에 울할머니 맘에 잘 들었던 남편은 15년동안 내내 할머니의 "귀애 손주사위"였다. 남편이 찍은 사진이며 등장한 신문기사를 정성스레 모으고 스크랩해서 거실에 걸어두셨다.

내가 큰애를 출산했을 때 할머니 나이가 77세였다. 엄마 없는 손녀가 당신은 얼마나 안쓰러웠던 것인지. 할머니는 주변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 연세에 2주 넘게 집에서 산후조리를 내내 도맡아 주셨다. 그건 평생을 두고도 갚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할머니 덕분에 산후우울증도 몸조리도 가뿐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본인도 성치않으신 몸으로 내 다리를 주물러주시던 손길이 생생하다. 그래야 산욕이 풀린다며..

가족인지라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서로 얼굴 붉히며 다투고 힘든 일도 여럿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늘 들어주시고 이해해주셨다. 강직한 성격임에도 잔정이 많으셨고 가족들에게 너무도 따스하셨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몸이 허약해지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와 늘 깔끔하게 쓸고닦으며 단란하게 사셨던 집. 2세 3세가 들락거릴 때마다 북적거리며 온기가 넘치던 집. 금슬좋던 배우자가 없어지면 혼자 남은 사람은 쓸쓸하고 약해지는 게 수순인 것인가. 할머니는 몇 개월 전 요양병원에 들어가셨고, 그 따뜻하던 집에는 이제 적막과 냉기가 흐를 것이다.

요양병원의 할머니에게 이틀 걸러 전화를 드린다. 2020년까지만 해도 잘 받으시고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시더니, 이번 해 들어서는 전화받기가 힘드신지 통화가 여간 어렵지 않다.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하지만 상태가 더 나빠지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할머니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에 편치가 않고, 할머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잘 아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도 걱정이 많다.

내일도 습관처럼 나는 요양병원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겠지. 신호음이 몇 번이 울리더라도 상관없으니, 할머니가 잠깐이라도 받아주시고 응응 한 마디라도 해주셨으면 한다. 면회도 안 되는 상황, 할머니 목소리라도 들으면 안심이 되는건데..

할머니가 부디 기력을 되찾으시기를 빈다.

할머니는 온 가족에게, 그리고 나에게,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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