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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맘과 인연

by 맘씨 posted Ma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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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동네 엄마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한두 명 정도, 아이들과 오래도록 가까운 친구 엄마 몇몇 가끔 연락나누고 얼굴 보는 정도였다. 회사생활 13년차의 직장맘이라 엄마들 단체모임에 낄 여력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내 스스로 참여에 열심이지 않았다. 연락은 담임, 선생님들과 직접 나누는 것을 선호했으며 아이들 행사나 모임은 휴가를 내어 조용히 참석했다. 요새는 학교의 각종 소통매체가 잘 되어있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아이들 소식 받거나 정보 얻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니 다행이었다.

지금에야 큰애가 중입을 앞두고 있고 작은애는 6학년에 올라가게 되니 학부모로서의 몸도 맘도 그다지 바쁘지는 않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힘겨운 시기가 있었다.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을 막 하고, 7살 작은애가 유치원에 등원할 때다. 

나는 그 시절 막 진급해서 한창 바쁠 때였고 저녁 7시 전에 퇴근해본 적이 드물었다. 큰애는 급식을 먹고 1시면 귀가해 있었으며 작은애는 유치원 종일반에서 저녁 8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매일매일 남편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등하원 등하교를 시켰고 정부 아이돌보미, 집 앞의 서울아가야 등의 돌봄을 한도 끝까지 이용하며 한 주 한 주를 겨우 버텨냈다. 

그 시절 내게 전장의 동지같던 동네 엄마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다연맘이다. 

다연이도 작은애처럼 병설유치원을 7살에 합격해 3월에 입학했다. 일하는 엄마로 인해 이모 집에서 쭉 크던 다연이는 예쁜 얼굴에 키도 크고 야무진, 씩씩하고 잘 웃는 꼬마였다. 엄마와 서울에 살게 되면서 동네 주민이 된 다연네는 우리와 자연스레 가까워졌는데, 그도 그럴것이 작은애를 하원시키러 갈 때마다 조용한 유치원에는 우리 둘째와 다연이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채은이 엄마죠?"

첫 만남, 3월의 어느 늦은 저녁. 다연맘이 내게 걸어오며 웃으며 건네던 말. 나중에 알고보니 이미 유치원 예비소집 때 내가 직장다니는 종일반 엄마임을 알아 기억해두고 있었단다. 아는 엄마들 하나 없어 조용히 있던 내게 먼저 다가와준 다연맘이 고마웠고, 나도 곧 마음 편히 연락을 나누게 됐다.

그렇게 저녁 늦게마다 다연맘과 나는 딸내미들 하원을 시키며 자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다연맘은 오랜 직장생활의 경험 및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친화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짬밥 내공이 느껴지는, 몇 마디만 나눠봐도 편안하게 소통이 되는 큰 언니의 이미지다. 우리는 첫 눈에 서로의 상황과 애환을 알아보았다. 우리가 좋아서 선택한 직장맘의 길이지만 매일이 시도때도 없이 한계에 부딪히던 나날이었기에 마음을 달랠 구실이며 해소법이 필요했다. 

차 한 잔, 커피 한 잔이 곧 맥주 한 잔으로 이어졌다. 동네나 집 안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 기울이는 일도 자주 있었다. 다연맘네 놀러갈 때는 1학년이던 큰애도 흔쾌히 자주 동행했고 어린이 셋을 놀리며 엄마 둘 오붓한 저녁시간을 갖기도 했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급할 때나 회사 일, 회식 등이 있을 때면 아이들을 봐주고 밥먹이고 재우고 하며 품앗이를 한 것은 물론이다. 

1년이 지나 딸들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연이는 작은애와 원래 다른 초등학교 배정이었는데, 다연맘이 학교를 바꾸는 초강수를 두면서 둘은 한 학교 학생이 되었다. 우리 식구가 얼마 후 독일에 살다 왔고, 두 꼬마숙녀는 초등 시절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 유치원 때보다는 좀 덜 교류하기도 했으나 친분과 우정은 여전했다. 다연맘은 매년 둘째의 생일을 예쁜 선물로 챙겨주었고 그 먼 독일에까지 한가득 보내주었다. 우리가 귀국해서는 다함께 친해진 예진네 및 나희네와 종종 모이기도 했고, 물론 또 예전처럼 다연맘네와 단란한 시간도 자주 보냈다. 

그러던 다연맘은 다연이가 5학년이 되기 직전 먼 신도시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게 된다는 건 오래 전에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때가 되니 무척이나 섭섭했다. 오랜 동지, 가장 힘든 시기의 기억을 공유하던 더없는 절친이 떠나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지만, 자주 보던 동네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면 기분이 이상해지고 허전해진다. 훌쩍 큰 아이들은 이별이 되려 덤덤한 것 같았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자고 약속을 했단다.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소통도 잘 되니 나 때처럼 손편지를 주고받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때때로 나는 그 시절을 생각한다. 늦은 밤 구두소리 종종거리며 정문을 지나 뛰어가던 병설유치원. 정답게 놀고 있던 우리 딸과 또 다른 딸같던 다연이 모습. 함께 도착한 다연맘과 이런저런 한탄에 푸념을 나누며 기운을 얻곤 했던 때. 아이들 해주던 수많던 저녁밥과 옹기종기 데리고 놀러가던 수영장, 공원에서의 모습. 엄마 둘이서 나누던 술잔과 끝도 없던 수다. 양주 한 병을 나눠마시고는 다음 날 숙취로 출근이 힘들었던 날. 좋아하던 삼겹살집과 치킨집 고기 회동. 직장 스트레스와 아이 기르는 것에 대한 밤을 새워도 모자랄 이야기들. 

늘 활기차고,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던 다연맘은 항상 그러하듯 자기의 길을 멋지게 개척해가리라 믿는다. 함께 어려운 시절을 아이 키우고 지내오며 많이 의지되고 고마웠던 사람이다. 인생과 일상을 대하는 또다른 관점을 알려준 사람인 그녀는 바쁜 직장생활 중에서도 최근 브런치 작가로 당찬 시작을 알려왔는데, 사려깊고 울림있는 다연맘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몸은 멀리 있지만 6년 전과 같이 진심을 담은 응원을 보내며, 코로나19가 끝나면 마음 편히 예전처럼 만나 인생과 인연에 대한 끝도 없는 수다를 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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