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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오밍 와인

by 맘씨 posted Ma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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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좋아해서 매년 다시 읽는다. 킬리만자로의 눈_The Snows of Kilimanjaro(1936), 빗속의 고양이_Cat in the Rain(1925), 노인과 바다_The Old Man and the Sea(1951), 늙은 내 아버지_My Old Man(1923) 등 애정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 특히 나는 와이오밍 와인_Wine of Wyoming (1933) 단편을 좋아한다.

헤밍웨이는 잘 알려진 와인 애호가였다. 1920년대 유럽, 프랑스 파리에서 신문사 특파원으로 지내며 다양한 와인에 빠졌다고 한다. 소시지와 빵 한 쪽, 1L의 와인을 가방에 챙겨 센느 강가로 걸어가 흘러가는 강물과 사람들을 관찰하곤 하던 그는, 그 시절 마시던 와인과 자신의 인생, 일상을 결합한 글을 여럿 써냈다. 

그가 귀국해 써낸 단편 중 하나가 와이오밍 와인이다. 제목에서부터 와인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 듬뿍 묻어난다. 

소설의 배경인 와이오밍주(State of Wyoming)는 미국 서부의 주로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적으며 알파벳 순서로도 마지막이라고 한다. 이곳은 로키 산맥과 미국 중부의 대평원인 그레이트 플레인 지역이 만나는 곳이라 경치가 매우 수려하며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이곳 와이오밍에 있단다.

물론 옐로스톤이 아이다호 주, 몬태나 주, 와이오밍 세 주에 걸쳐 있기는 하나 대부분이 와이오밍에 있고, 또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지만 아름답고 장엄한 풍광의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도 있다니, 인구는 적지만 주 전체가 그야말로 국립공원 급이며 드물게 사람들이 조금 사는 수준의 아름다운 주가 와이오밍주라고 하겠다.

이 와이오밍 주를 배경으로, 와이오밍 와인에는 남프랑스 출신 부부인 폰탄 부부가 등장한다. 미국 이민을 온 이민자 노부부로, 술집을 겸한 음식 가게를 운영한다. 헤밍웨이는 화자의 입장에서, 여행과 사냥을 함께 즐기는 절친한 친구와 함께 폰탄씨네 가게를 종종 방문하는 작가 손님으로 그려진다. 사람 좋은 폰탄 씨와 폰탄 부인에 대한 묘사 및 폰탄 부인의 다정하고 수다스러운 이야기가 정감가고 사랑스럽다.

소설에는 당연히도 술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맥주, 위스키부터 와인에 대한 폰탄 부부의 대사들이 무척 재미난다. 

폰탄부부는 미국에 온 뒤 사람들이 맥주에 위스키를 타서 마시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어린 녀석들이 가게에 와서 와인이나 맥주를 달라고 하고는 자기들이 병에 담아 온 밀주에다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했고, 단정하고 멀쩡해 보이는 여자들이 사내들과 같이 와서는 맥주에 위스키를 타 마시고서 속이 불편해져서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 하느님, 태어나서 그런 건 처음 봤어요. 맥주에다 위스키를 타다니,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프랑스 출신답게 와인에 커피를 타서 마시거나 와인에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장면 역시 등장한다. 와인에 조예와 애정이 깊은 폰탄 씨는 직접 만든 수제와인에 대한 자부심도 큰데, 저녁마다 주인공에게 자기 와인을 맛보여주고 싶어 은근 안달을 낸다. 늙은 아내의 수다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도 한 마디씩 거드는 추임새도 사람 좋은 폰탄 씨의 특징이다. 

 

어느날 주인공은 친구와 폰탄 씨 가게에 들르려던 계획을 궂은 날씨와 피로로 인해 취소하게 된다. 그들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렸을 폰탄 씨는 준비해뒀던 와인을 혼자 모두 마셔버리고 만다. 며칠 후 작별 인사를 하러 들르자, 아쉬워하던 폰탄 부인과 폰탄 씨는 다른 곳에 저장된 와인이라도 챙겨주겠다며 나선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고 와인을 더 구할 수는 없었다. 당황하여 멍한 표정으로 속상해하는 폰탄 씨에게 작별을 고하고 차에 오른 주인공과 친구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 날 폰탄 씨네 갔어야만 했어."

"어쩔 수 없었지. 그래도 우리는 갔어야만 했어." 

 

이 소설을 읽을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결국 주인공에게 와인을 건네주지 못해 벙찌고 슬퍼하는 폰탄 부부의 사연으로 마무리됨에도, 이야기가 내내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이어서일 것이다. 작가가 사랑하는 와인이 주제라 그런지 다른 단편들보다도 한결 순한 울림을 준달까.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하고 실속있는 문장에,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절제된 듯 하면서도 은근히 세심하다. 내용이 어둡지 않은데다 헤밍웨이의 허무주의적 느낌도 거의 없다. 

우리 가족도 유럽에 살 때 크로아티아의 한 가정에 방문해 몇 박을 지낸 적이 있다. 금발의 중년 선장님 부부는 금슬도 인정도 좋은 분들이었는데 특히 남편분의 수제 크로아티아 - 달마티안 와인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오로지 물과 포도 및 온도와 습도를 이용해 만든다며 한 시간 가까이 와인에 대한 장인정신과 인생론을 늘어놓으셨다. 동네에서 첫 손에 꼽히는 와인이란 말이 딱이게, 구운 생선 및 빵과 함께 먹던 선장님 와인은 정말 맛있었다. 

현재까지로선 와인을 전혀 모르기에 여기저기 귀동냥 눈동냥을 하며 조금씩 마셔보는 중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점차 더 매료되고 자연스럽게 빠져들어갈 것만 같은 술이라는 점이다. 이번 봄도 와이오밍 와인을 다시 읽으며 내가 살던 유럽의 그 풍성하고 다양하던 와인들이 그리워졌다.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와이오밍 주에도 언젠간 가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뤄지기는 힘든 꿈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와인을 마셔야겠다. 안주는 이웃님이 추천하셨던 담백한 빵 및 쫄깃한 순대로 준비할 것이다. 조금씩 와인을 더 접하고 알아가보고 싶다. 아래 헤밍웨이의 글처럼.

“유럽에서 우리는 와인을 음식처럼 건강하고 일상적인 것, 행복과 웰빙 그리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위대한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와인을 마시는 것은 잘난 척하거나 허세 혹은 컬트를 표시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밥 먹듯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와인이나 맥주 혹은 다른 반주 없이 식사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단맛이 나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것 빼고는 모든 포도주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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