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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by 맘씨 posted Oct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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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주말 우리 식구는 영영가족네와 바람을 쐬러 동해에 다녀왔었다. 숙소를 강릉에 잡았는데, 운 좋게도 방에서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이었다. 덕분에 아침해가 뜨는 동해, 낮의 드넓고 환한 바다 풍경, 초저녁 파도가 치는 운치있는 정경 및 어스름지는 바닷가와 밤바다까지 하루의 모든 바다 모습의 변화를 눈에 가득 담을 수가 있었다.

바다만 보고 있는데도 지루할 새가 없었다. 너른 수평선 쪽은 바닷물이 새파랗게 투명했고, 다른 쪽은 청록색으로 반짝거렸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작았다가 커졌다가, 흰 물보라였다가 회색이었다가 하며 변화롭게 다채로웠다. 구름이 덮이면 바다에 그늘이 졌고 햇볕이 쨍해지면 바다 색도 물결들도 세상 투명해졌다. 

한날엔 모두 함께 해변으로 나갔다. 고운 모래사장은 하염없이 부드러웠고 바닷바람은 여름을 지난 기운으로 제법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었다. 탁 트인 눈 앞의 동해는 그 거대함과 푸르름으로 우리를 압도시켰다. 발을 담가볼까 하다가도 계속해서 거칠게 밀려오고 부서지는 파도 때문에 가까이에는 못 간채 일정 간격을 두고 한참을 바라봐야만 했다. 

바다는 너무 아름답다. 하지만 두렵다. 나는 바닷가에 살아본 적도, 바다와 관련한 일을 하지도 않지만 바다가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지 조금은 알겠다. 나이가 들고나서야 해수욕이며 스노쿨링, 서핑과 요트 등의 바다 레저활동을 조금씩 맛보고 있는 나다. 하지만 구명조끼와 여타의 생존장비 없이는 절대로 바다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싶지 않다. 수영을 못하기도 해서이지만 깊고 거대한 바다가 주는 공포가 나에게는 꽤 묵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 바다의 무서움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던 선장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전세계 바다 일주를 하며 얼마나 많은 고초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생각한다. 동남아와 일본의 쓰나미를 보면서 바다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꼈고, 얼마 전 동해 고성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너울성 파도에 엄마와 어린 아이 두 명이 쓸려가 사망한 사건도 있어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바닷가 해변이 언제 급변할지 모른다는 게 으스스함을 느끼게 한다. 

좋아하는 영화 "가타카"에서는 빈센트와 안톤 두 형제가 바다에서 수영 대결을 벌이는 명장면이 나온다. 깜깜한 밤, 어둠 속 폭풍우가 몰아치는 와중에 형제는 해안가에서 멀리, 더 멀리 사력을 다해 헤엄쳐간다. 체력적으로 더 우월한 동생은 돌아올 체력까지 고려하여 승부를 접고자 하지만 열등한 유전자이자 부적격자인 형 빈센트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명장면에 어울리는 아래의 명대사. 

안톤: 빈센트 형,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 모든 걸 어떻게 해낸 거냐고? 되돌아가야 해.

빈센트: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반대편으로 가는 쪽이 빨라.

안톤: 반대편이라니? 우리 둘 다 빠뜨려 죽일 셈이야?

빈센트: 내가 무슨 수로 이겼는지 알고 싶어? 난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 안톤. 그래서 널 이기는 거야.

자신보다 먼저 되돌아갔음에도 익사할 뻔한 동생 안톤을 구한 빈센트. 다시 어둠과 거센 바람, 높다란 바다의 파도를 온몸으로 헤치며 해안가를 향해 헤엄쳐가는 그 고독하고 처절한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영화가 바다 씬을 통해 무얼 말하고자 한 것이었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무리 좋은 환경과 유전자로 대표되는 조건에 놓여 있더라도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는 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일 듯하다. 어쨌든 매번 동생에게 수영시합을 지곤 하던 주인공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바다 한복판에서 자신의 운명을 건 최후의 대결을 펼쳤고, 그 바다 장면 모두는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영화와는 달리, 지난 강릉의 동해바다는 고요하고 아름답고 평온할 뿐이었다. 우리는 바다 수영을 할 것도 아니었기에 반짝거리는 물결과 긴 파도, 끝없는 수평선을 보며 멀리서 가을 바다의 정경을 느꼈지만 그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이었다. 짧은 여행이지만 바다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가 있었다. 

 

바다가 삼면에 있어 참 좋은 우리나라다. 사계절에 한두 번씩은 바다를 눈에 직접 담고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 해변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안전하고 여유롭게 바다를 더 배워가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드넓게 아름답고 푸른 바다는 늘 나에게 신비와 미지와 두려움을 함께 안겨주는 그런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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