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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by 맘씨 posted Nov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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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둘째주에 남편과 함께 김장을 했다. 네 식구 보관하며 먹을 요량으로, 많지 않게 배추 15포기만 담궜다. 싱싱한 홍갓과 청푸른 미나리도 미리 절여두어 갓김치와 미나리김치도 담갔다. 흙쪽파 며칠 전 씻어 다듬어두고 몇 단 양념장에 함께 넉넉히 담아놓으니, 미뤄뒀던 큰 일 후련하게 끝낸 듯이 마음이 마냥 든든하다. 

나는 김장날 휴가였지만 남편은 출근을 해야하니 꽤나 이른 시간에 시작을 했다. 절임배추는 록어머님께 추천받은 충북 괴산의 농장에서 새롭게 주문을 해뒀었다. 양껏 준비된 양념장에 채소들 전날 씻어 썰고 다듬어두니 당일 김장날에는 아침부터 속만 채우면 끝. 부지런을 떤 덕분에 오전 10시 전에 김장 15포기가 정리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기억해보면 울엄마는 김장을 집에서 매년 하진 않으셨다. 아빠가 덜 익은 아삭김치를 좋아하셔서, 거의 매번 겉절이식으로 알배추 한포기씩 담가 식탁에 올리는 식이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김치를 많이 갖다주셔서 늘 집에 김치는 많았다. 할머니네 김치와 강화도 외갓집 김장김치, 그리고 음식 잘하는 큰이모네 김치 등이 매년 집에 몇 포기씩 들어오곤 했다. 

엄마는 특히 파김치를 좋아하셔서 쪽파와 대파로만 김치를 잘 담가 드셨는데, 그 입맛은 그대로 나에게 내려와 나도 제일 좋아하는 김치가 쪽파김치다. 계절 구분없이 자주 만들어 먹는데 이젠 얼추 엄마가 예전 해주던 맛이 드는 것 같다. 매콤 진득한 양념장에 버무려진 알싸한 파의 식감과 향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고들빼기김치도 엄마의 히트 품목이었다. 희한하게 그 쓴 맛을 적당히 잘 뺀 고들빼기를 엄마표 맵싹한 양념에 잘 버무려 익혀 맛을 낸 고들빼기김치. 주변에서 먹기가 힘들어 엄마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던 김치였다. 결혼하고 나서 한 번 도전해봤는데 쓰고 맛이 없게 되어 근 10년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사먹어도 봤는데 특유의 풍미가 없었고 달기만 했다. 예전의 그 맛이 그립고 그리워진다.

그 외에도 할머니의 시원달달한 깍두기와 새콤한 양배추김치, 외할머니의 알싸한 순무김치와 아삭한 오이김치, 큰이모의 큼직큼직 석박지와 맛이 잘 든 총각무김치 등, 내 추억의 김치맛들은 그 갈래가 여러가지다. 

주인공인 배추김치야 언제나 맛이 좋지만 다른 조연급 김치들도 왜 그리 늘 새롭고 구미에 당기던지. 결혼하고서는 김치 장인이신 록어머님의 갓김치 맛에 푹 빠져서 먹을 때마다 감탄에 탄복을 하곤 했다. 김치는 정말 다채로운 음식 예술이다. 

아이들은 언제부턴가 급식 김치가 맛이 덜해졌다고 볼멘소리다. 재작년 급식체험을 가서 먹었던 초등학교 김치는 내 입에도 참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최근에 업체가 바뀌었는지 배추가 달라졌는지, 예전 그 맛이 잘 안난단다. 둘 다 김치를 좋아해서 양껏 먹는 편이라 외국살이 할 때도 김치만은 꼭 담갔었다. 첫째는 가끔씩 김치만 대접에 퍼서 먹기도 하고, 둘째는 특히 고기먹을 때 김치없으면 큰일이 난다. 이런 아이들이니 급식 김치에 아쉬워하는 게 이해가 간다. 

부디 이번 김장도 맛있게 잘 되어서 김치 좋아하는 울 애들, 집김치에 엄지 척 할 수 있기를. 추워지는 늦가을과 더 추울 앞으로의 겨울동안에 이 김치들이 우리 식구의 귀한 저장식량이자 반찬, 요리들이 되어주길. 

김장을 끝내고 홀로 차를 한 잔 하며 생각한다. 오늘 혼자 먹는 점심은 라면에 새 김치로 결정이다. 네 식구 저녁은 돼지수육 삶아서 김장김치 곁들이면 딱 좋겠다. 두 어깨는 조금 욱신거리지만, 든든함과 후련함에 마음이 한없이 즐겁고 뿌듯하다. 김치는 영혼의 음식이고, 김장은 고되지만 즐거운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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