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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조정의 내공

by 맘씨 posted Aug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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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기르다보면 시시때때로 고민의 기로에 놓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화내거나 소리치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똑부러지게 일갈하는 시원한 성격도 못 되는 나는 매번 애들 다툴 때마다 이런저런 남모를 고충이 은근하게 많기도 하다.

 주말인 오늘도 그렇다. 둘째가 자기 방을 정리하다가 오빠의 이름이 적혀진 템버린 악기세트를 발견해,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이거 오빠 건데, 이제 더이상 안 쓰지?"

 다른 것에 열중하던 큰애는 건성으로 응응 해버렸고, 둘째는 곧바로 템버린을 분리수거통에 갖다 넣어 버린다. 그러자 뒤늦게 큰애의 짜증섞인 목소리.

 "지금은 안 쓰지만 음악 수업 때 쓸 지도 모르니 버리지 마라."

 다른 일을 시작한 둘째도 지지않고 맞선다.

"오빠가 찾아와. 그리고 오빠 거니까 내 방에 두지 말고."

 이렇게 시작된 다툼은 티격태격 3분이 넘어간다. 네가 말도없이 가져와서 버렸네, 오빠가 다시 가져오면 되잖네, 내 물건을 마음대로 처리하네, 어쩌고 저쩌고 짜증섞인 언성이 마구 높아진다. 덩달아 내 머리도 어지럽고 화가 스물스물 치밀어 오른다.

 "아이, 엄마 요리하는데 둘 다 정말.."

 나름대로 저음을 깔고 아이들을 향해 읖조린다. 잠시 주춤하던 애들은 또 각자의 주장에 열을 내며 언성이다. 더욱더 내 머리는 어지러워지고, 이 시끄러운 상황을 얼른 끝내고만 싶어져, 급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짐짓 위엄 있게 말한다. 

 "은이가 버렸으면 다시 가져와서 제자리에 두어야지."

 그러자 은이는 자기 물건이 아니라 그럴 이유가 없다며 쫑알거린다. 

 "그러면 진이가 다시 가져올까?"

 하지만 진이는 자기 허락도 안받고 버린거니 당연히 동생이 가져와야 한단다.

 나름대로 엄마로서 개입을 한다고 했는데, 아이들 말에 휘둘거리며 갈등을 조정하는데는 실패한, 민망하고 처참한 상황이다. 더욱더 기분이 혼란해진다. 머리를 짚고 숨을 씩씩거리고 있자, 서재에 있던 남편이 등판한다.

 "템버린 진이 꺼지? 진이가 안 버리고 갖고 있을거라고 했으니까, 가져와서 진이 방에 놓아둬! 그리고 은이는 마음대로 오빠 물건을 버린 거에 대해서 사과해!" 

 한 큐에 정리되는 깔끔한 훈육과 조정의 순간이다. 어지럽던 내 머리도 말끔해지고, 공황 장애가 온 것마냥 어버버하며 어찌할 바 모르던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안정과 평안을 되찾고 자신들의 일에 집중한다.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던 남편도 오늘의 훈육이 성공으로 귀결됨을 확인한 후 서재로 향한다. 집안은 이전처럼 평화롭고 아늑해졌다. 잠시 놓았던 칼질에 다시 집중하며 생각해본다. 

 시시비비를 따져 기준을 잡고 다툼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유있는 항변을 하고, 얼마나 자기가 더 올바른 행동을 했으며, 상대로 인해 더 많이 억울한지를 쉼없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둘 모두의 이야기를 신중히 듣고, 세심히 저울질을 한 후에 한 마디 했더라면 되었을 것을. 우유부단하고 직관적인 엄마는 이 말에 흥 저 말에 흥 왔다갔다 하며 모두가 만족하고 수긍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남편이 마무리를 해주었으나 엄마로서 은근하게 분한 마음이 드는 이 쪼잔한 심정은 뭘까.

 심정을 토로하니, 남편은 웃는다.

 "아까 마눌 말이 10초만에 바뀌던걸. 기준이 중요해."

 남편이야 뭐, 아이들 꾸중할 때 엄청나게 머리를 쓰며, 모든 가능성과 변수까지 고려해 최적의 발언을 내놓는 타입인 걸 잘 안다. 나는 그게 잘 안 될 뿐이고. 사람은 다 다르지 않나.

 아이들에게 엄마는 평화주의자라고 자주 말한다. 내가 화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걸 우리 애들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저 사랑이고, 친근하고, 부드러운 존재임이 우리 집에서의 내 위치다. 하지만 이 성과도 모두가 남편이 아이들을 제대로, 균형감 있게 지도하고 훈육하며, 일상의 시시비비를 정당하게 가려주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 식구 모두가 잘 안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명 판사처럼 아이들의 갈등을 뿅 하고 해결하는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가 되고프다. 마음속으로도 연습하고, 글도 써보고 했는데 왜 실전에서는 잘 안 되는 것인가. 명쾌한 판단력과 시원한 일갈력의 조정 내공을 가지기 위해서 엄마로서의 난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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