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고,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듯 먹는 일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공부를 하기로 하고 돈 몇푼을 구해왔을때 학생회관에서 밥을 사먹을지, 밥솥을 사서 원룸에서 밥을 해먹어야 할지 고민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다.
사먹는 밥은 편하다. 장점은 그것 하나 뿐. 그닥 맛이 없고, 좀 먹다 보면 질리며, 갖고 있는 돈으론 그리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영양가도 그리 좋을까 싶다. 결국 후자로 결정하고 전기압력밥솥을 중고로 하나 사서 왔다.
쌀을 사서 처음 해먹은 밥은 깜짝 놀랄만큼 맛있었고, 고추장이나 참기름에 계란 후라이나 김치 따위를 반찬으로 해서 먹어도 훌륭했다. 계란이나 고추 따위를 넣고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으면 미슐랭이 부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왠만큼 돈이 떨어져도 굶어죽지 않을거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대충 내가 원하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건 그때 밥솥은 사기로 한 결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학관 밥을 먹었다면 몇달 지나지 않아 돈이 떨어졌을테고, 돈을 구하기 위해 이런 저런 일들을 했어야 했을 것이며, 그렇게 현실에서 뎅구르르 구르다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마워. 밥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