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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아침

by 맘씨 posted Sep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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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서늘한 기운에 일찍 눈이 떠졌다. 9월 중순, 제법 시원한 공기가 창을 통해 들어와 내 코를 간질인다. 잠시 다시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가을의 바람을 느껴본다. 습하고 꿉꿉하던 얼마 전까지의 여름날이 잠깐 뇌리에 스친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게 제대로 실감이 난다.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초가을에는 전국적인 태풍이 우리나라를 자주 강타하기도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눈부신 날들이 쭉 펼쳐진다. 햇볕이며 온도 모두 1년 중 최고의 시기가 된다. 바람은 청량하면서도 상쾌하고, 공기 중의 습도도 더할 나위가 없다. 하늘은 너무 파랗고 높아 물감 풀어놓은 듯 말 그대로 공활하다.

오랫동안 나는 여름을 제일 좋아해 왔다. 내 생일이 여름이기도 하고, 더운 날씨가 내 컨디션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요새는 조금씩 바뀌어가는 듯 하다. 짧게 지나간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30대 후반이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계절 가을이 애틋하고, 마음에 끌리고, 붙잡고 싶고 그렇다. 동경하는 연인에 대한 심정이 이런걸까 싶다.

남편에게 가을이 오니 어떠냐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이렇게 답한다.

"벌써 이렇게 한 해가 후반부로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아쉽기도 하고. 날씨가 좋아서 좀 설레이기도 하고."

불혹을 넘긴 남편인지라 가을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와 좀 다른 듯도 하다.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경향이 있다던데, 가을에 태어났고 가을을 유독 좋아하는 남편조차도 한 계절 안에서 아쉬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끼고 있나보다. 그로서는 가을을 제대로 타는 중년의 시기가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가을 즈음에 세월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고 하는 그이기도 하고.

이렇게 계속 우리가 함께할 날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겠다. 단지 그저 바뀌어가는 계절과 순리에 따라서, 주변에 해 되지 않게, 스스로 모나지 않게, 현명하고 유하게, 그렇게 같이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가을바람이 우리의 아침을 소리없이 깨워준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에 맞추어 나이들고 싶다.

다시 또 어김없이 오늘의 일상은 시작된다. 출근길의 잔잔한 바람이 기분좋고, 걸을 때마다 은은한 가을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올려다 본 가을 하늘빛에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태양 고도가 낮아지고 지표 온도가 차가워져, 높은 하늘의 기온이 높아지고 대기층 대류가 안정돼 지상의 먼지가 상공으로 올라가지 못하여 가을 하늘이 이토록 파랗게 보인다는 것. 학창시절 외우고 익혀서 아는 사실들.

그래도 기왕이면 좀더 낭만적인 바라봄이 좋지 않겠나. 가을은 우리 모두를 서정적이게 만드는, 짧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계절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미국 펄벅 작가의 말처럼 "가을하늘을 네모 다섯모로 접어 편지에 넣어 보내고 싶다"는 표현이 오늘의 가을아침엔 더 잘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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