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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영화감상

by 맘씨 posted Sep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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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성 보통, 운동신경 보통, 유머감각 보통.밖보다는 집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활자 중독에 영화 매니아 소녀였다. 집에 있는 책을 다 끄집어 읽고도 부족해서 할아버지 집에 있던 고전들과 근대문학, 현대문학집을 모조리 갖다가 읽었고,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와 EBS 영화프로그램은 놓치지 않고 챙겨봤다. 내 시력이 나빠진 데에는 그 시절 눈을 너무 혹사해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처음 영화관에 갔던 건 1991년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엄마, 동생이랑 광명시 할머니 댁 근처의 상영관에 가서 "미녀와 야수" 디즈니 만화를 보았는데, 나는 보면서 펑펑 울었고 며칠 밤을 그 영화 꿈을 꾸었더랬다. 그 다음해인 1992년에는 동생과 손붙잡고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알라딘 디즈니 만화를 보았는데, ost며 영상이 어찌나 황홀한지 행복해서 기절할 뻔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영화보는 게 더 재미있어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단골 가게에서 비디오를 대여해 친구들을 모아 함께 보았다. 나름대로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내 나름의 의식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보았던 비디오 영화들이 100개가 넘는데, 하나하나 모두 노트에 적어놓았었다. 제목은 빨간색 감독은 파란색 주연배우는 검정색 출시연월일은 남색 볼펜으로 세심히 정성껏 기교까지 부려가면서.

고등학생이 되고 입시에 바빠지면서 비디오며 영화감상은 먼 일이 되어갔다. 적어둔 영화 리스트 메모를 계속 읽거나, 가끔씩 엄마아빠가 보시는 TV영화들을 슬쩍 함께 보았을 뿐이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정말 거의 매주 영화관에 갔고, 다시 영화 블로그들을 탐독했으며, 사회대 연극당에 가입해 실제로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개인적 로망을 이루기도 했다. 

이렇듯 나름 영화소녀였던 내 모습은 요새의 우리 둘째에게 많이 투영이 된다. 소녀적 감수성이 나보다 더 깊은 듯한 딸내미는 하루에 해야 할 과업들인 과제 및 숙제, 고양이 변소 청소, 고양이 밥과 물 주기, 오빠와 점심 차려먹기, 어린이 동영상 강의 듣기, 방 청소하기 등 을 모두 깔끔히 끝낸 후 책 한 권을 펼쳐 읽는다. 이 과정이 마무리가 모두 되면, 딸은 거실로 나와 넷플릭스로 영화를 하나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관람을 시작한다. 

12세 관람가 영화들을 어찌나 쏙쏙 빼서 개인 노트에 꼼꼼하게 적어놓았는지, 예전 내가 비디오 리스트 적어놓은 것이 오버랩되곤 한다. 나와 달리 영화 취향도 확실한 딸내미는 다큐멘터리와 만화 부류는 따로 떼어놓은 채 선택한 영화들의 제작국, 장르, 내용적 특징까지 머릿속에 담아놓았다. 그리고는 하나씩 즐거운 마음으로 도장깨기를 하듯이 영화감상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본인의 지정 쇼파에 쿠션을 안고 앉아, 둘째고양이를 무릎에 올리고 큰 눈을 빛내며 스크린에 집중하는 둘째. 옆 탁자에는 리모컨과 주스 한 컵, 메모장과 펜이 가지런히 놓였다. 좌우 1.5 시력 유지를 위한 적정거리 확보 및 세심하게 조절된 거실 조명과 TV 볼륨도 잊지 않는 모습. 순수하게 영화에 집중하는 그 감상의 시간이 둘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놓칠 수 없는 일과인지, 역시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로서 충분히 공감이 된다. 

가끔 둘째의 영화를 함께 보다가 주책맞게 내가 먼저 눈물이 줄줄 나는 걸 들킨 적도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잘 우는 나, 둘째는 그런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는 감정이 너무 풍부해. 나는 저 장면에서 눈물까진 안 나는걸?"

울보 엄마의 눈물샘까지 물려받을 필요는 없을 듯하고, 지금처럼 활자와 영화를 사랑하는 감수성 있는 사람으로 커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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