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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굴젓

by 맘씨 posted Oct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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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굴젓을 생각하면 울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직장 근무를 평생 하시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실 때가 많아서, 나와 동생은 아빠와 저녁밥을 더 자주 먹었다. 아빠는 선생님이셨고 근무학교도 대체로 가까운 곳이라 엄마보다는 일찍 귀가하셨고 자주 엄마를 데리러 나가시곤 했다. 

 

엄마가 밤늦게 돌아오셔서 자주 드시던 밥반찬이 바로 어리굴젓이다. 다른 찬 없이, 냉장고의 시원한 어리굴젓을 꺼내 종지에 소복히 담으신 후 뜨거운 쌀밥에 조금씩 올려 비벼서 드셨더랬다. 나는 젓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그 매콤 비릿하게 특유의 향 가득한 어리굴젓을 엄마는 그렇게도 좋아하셨다.

사춘기에 왜인지 모를 반항심과 짜증이 생기고 할 때는 엄마의 어리굴젓 먹는 소리도 모습도 싫을 때가 있었다. 맨날 늦게 와서 왜 저렇게 혼자 처량하게 밥을 먹는지. 다른 반찬도 많은데 냄새도 별로인 저 굴젓만 왜 저리 자주 먹는지. 엄마에게 볼멘 소리를 한 적도 있었고 싫은 마음을 일기장에 적어두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리굴젓이 마음에 안 들었다. 괜한 화풀이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냉장고에서 나는 그 굴젓 향조차 싫고 미웠다. 이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는 어리굴젓에 내 입맛을 맞추지 못했다. 생각하면 기분만 안 좋아졌다. 엄마가 해 준 음식들은 다 맛있고, 정감있고, 이제까지도 쭉 좋아하는데 어리굴젓만은 예외였다. 

엄마가 직접 해줬던 음식이 아니니까, 어릴적부터 내 입맛에는 안 맞았으니까.. 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어리굴젓을 떠올리면 엄마의 퇴근 후 피곤에 지쳐계시던 그 모습이 떠올라서 더 속상하고 마음 안 좋은 거였다. 길고 고된 밖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밥 한 그릇 비벼드시던 그 고단함이 연상되어서 더 슬펐던 거다.

며칠 전 일이 몹시 늦게 끝나 밤 9시 반이 넘어 귀가한 적이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먼저 저녁을 먹은 후, 내가 먹을 밥상을 정갈히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쌀밥에 달걀부침, 배추김치, 무침나물, 김, 소시지볶음과 한 종지의 고추장이다. 얼른 씻고 앉아 밥에 고추장을 얹고 비벼서 반찬들을 얹어 먹었다.

그런데 먹는 동안 왜인지 눈물이 찔끔 난다. 우리 식구들한테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그리고 예전에 밥상 앞의 울엄마 모습 생각이 나서다. 나도 옛날에 늦게 귀가하는 엄마한테 이렇게 미리 식탁 가끔 차려드려 놓을걸. 좋아하시는 어리굴젓 놓고, 같이 싸먹게 김도 올려놓고 할걸.. 

어리굴젓이 좋아지는 날은 아마 없을 것 같지만, 그냥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너무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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