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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발레 슈즈

by 맘씨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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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인지 여름비가 그치질 않는다. 내겐 여름마다 생각나는 책이 하나 있다. 80년대생 여러 아이들이 그랬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시절 지경사 출판의 소년소녀 명작문고에 푹 빠져 지내며 학급서적에 비치된 책들을 곧잘 찾아 읽었더랬다. 여러 가지의 도서들에 심취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종종 떠오르는 것이 "핑크빛 발레슈즈" 다. 

L. 힐 작가의 성장소설인 이 책에서는 발레를 사랑하여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유순하지만 강단이 있는데다 늘 밝고 긍정적인 소녀, 안타깝게도 부모님을 모두 여읜 후 살던 도시로부터 시골의 사촌댁에 내려가게 된다. 더부살이의 과정에서 여러 고생스러운 에피소드를 겪고, 그 와중에 다소 까칠하지만 음악적으로 영민하고 정이 있는 소년을 만나 깊은 친분을 쌓게 된다. 

어릴 적부터의 꿈인 발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계속하여 노력하던 주인공은 아주 우연한 기회로 도시에서의 도약 기회를 얻게 되고,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소년의 도움을 받아 발레 오디션을 보러 떠난다. 이후 메이저 발레극단의 연습생으로 합류하고, 또 그 안에서 온갖 고생과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이어지게 된다. 

힘든 와중에 다시 만나 함께한, 재능있는 음악가가 된 소년. 그는 자신의 곡 발표회에 소녀가 참석해주길 바라지만 주인공은 또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발레극단으로 향하려 한다. 그 순간 예전부터의 오랜 사랑을 고백한 후 냉정하게 마음을 닫는 그. 주인공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떠나 극단에서 주역인 배역을 맡고, 혹독한 훈련 끝에 프리마돈나로서의 성취를 이룬다. 

성공적인 공연 후 열광적인 커튼콜이 끝나고, 공연 후 사람들을 피해 밖으로 나오던 주인공은 어두운 계단 아래에서 어른이 된 소년, 도시의 촉망받는 작곡가이자 지휘자가 된 남주인공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고백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니? 너를 만난 순간 느꼈어. 이제 이런 여자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절대적인 존재다라고 말했었지. 너와 헤어진 후로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나에게 있어 너는 절대적인 존재야. 이제 헤어지지 말자." 

다시보면 좀 오글거리는 스토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의 내게 이 1,2권의 책은 굉장한 설레임과 애틋함을 안겨주었다. 발레까지는 힘들더라도, 주인공처럼 나도 저렇게 끈기있고 당당하게 자기 길을 잘 헤쳐나야지 생각했다. 물론 더 큰 소망이라면 소년처럼 솔직하고 자신감 있으면서도 나에게만 다정다감한 사람을 만나기를 꿈꿨달까.

어린 나이라 책 문구 하나하나에 감수성이 엄청나게 폭발할 때였다. 참 책장이 닳도록 읽으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뭉게뭉게 풀어내보곤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수하고 아름답던 유년 시절이었다. 

이 책을 다시 읽고싶어진 건 딸이 10세쯤 되던 즈음이었다. 딸 나이에 엄마가 재미있게 접했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다른 여러 책은 함께 다시 읽고 나누었는데, 절판된 이 도서만은 구할 수가 없어 아직까지도 요원한 상태인 것이다. 

절판 도서에 대한 열망이 나 뿐만은 아닐것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을 봤다. 안타까운 마음에 지경사에 재출간을 부탁하는 이메일도 보냈고, 중고 서적점을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지만. 온전히 합당한 가격에 다시 그 책들을 구하기가 몹시 힘든 일은 맞다.

다시 보고파하는 엄마를 보며 딸내미가 얼마 전부터 애쓰는 눈치다. 초등학교 6학년, 딱 내가 열심히 그 책을 읽었던 나이의 딸이다. 이것저것 알아도 보고 온라인 서점들도 찾아봐주는 모습이 귀엽고 기특하다. 엄마가 그간 핑크빛 발레슈즈 얘기도 자주 해서 이미 내용도 거진 다 알텐데,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10대 초반의 소녀 감성을 지닌, 무엇이든 모두 해낼 듯한 활기차고 싱그러운 나이의 딸을 바라보며 느낀다. 둘이서 핑크빛 발레슈즈를 같이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건이 안 된다해도 괜찮다. 단지 가끔씩, 열과 성을 다해 읽었던 그때 그 기억을 끄집어내며 이야기 나누면 될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나의 그 시절, 10대의 순진무구하고도 여리한, 파릇파릇한 청춘이 함께 소환될 것만 같다. 핑크빛 발레슈즈처럼, 내 추억도 함께 말이다. 

 

딸아이는 이제 곧 가슴이 두근두근할 감수성의 소녀 시절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핑크빛 발레슈즈의 주인공과 꼭 같을 나이다. 품에 안기는 딸에게서는 청순하고 발랄한 여름의 냄새가 난다. 이 순진하고 순수한 청춘의 빗장 뒤에서, 딸은 얼마나 아름답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꿔나가게 될까. 엄마로서 기대와 호기심이 생긴다. 

그게 비해 이젠 난 소녀명작소설과는 꽤나 한참 멀어진 나이지만 이렇게라도 간간히 떠올리며 다시 읽고파할 수 있다는 게 즐겁다. 딸을 가진 엄마의 행운인 것인가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감사한 일이다. 아름답던 소녀 시절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지만, 당시 책장에 파묻혀 설레어하고 서성거리던 어린 날의 그림자가 내 가슴에도 일렁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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