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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by 맘씨 posted Oct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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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에 나는 원래 소질이 없었다. 어릴적부터 정리정돈을 깔끔히 하지 못했고 내 방과 책상은 늘상 은근하게 어질러져있는 상태였다. 청소가 가족 각자의 몫이었기에 부모님께서는 자녀들 공간에 잘 관여하지 않으셨고, 내가 머무는 곳의 위생과 청결 관리는 일찍부터 내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난 청소 상태는 마음에 흡족하게 든 적이 별로 없었다. 

 

동생이 나보다는 수납을 잘 했고 물건들도 단정하게 배치하곤 했는데, 문제는 동생의 짐이 좀 많은 편이었다는 거다. 직접 벽지를 고르고 방 페인트칠을 할 정도로 인테리어와 방꾸믹에 공을 들이던 동생이었지만, 사모으고 진열해둔 물품이 너무 많아 얼핏 보면 정리가 안 된 방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내 방은 물건의 가짓수가 적어서인지 그나마 청소상태에 비해서는 좀 덜 어지러져 보였던가. 

 

그랬던 동생도 결혼 8년차고, 나도 가정을 꾸려 산지 15년이 다 되어간다. 동생이 결혼할 때 예비남편, 그러니까 우리 제부인 임서방이몹시 깔끔한데다 청소를 너무 잘해서 좋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는 말을 했다. 

 

"너도 나름대로 청소 잘 하잖아."

"아냐 언니. 나랑 완전히 차원이 다르게 청소를 해. 내가 청소하면 마음에 안 들어 할걸."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며 좀 의아해하다 말았던 나, 이후 동생의 신혼집과 평수를 넓혀 이사한 두번째 집 모두의 티끌 한 톨 없는 청결상태를 보며 혀를 몇 번 내두르고 나서 모든게 이해가 되었다. 

 

청소 잘 하는 사람이 우리 제부뿐만은 아니다. 주변에 청소라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을 많이 봤다. 우리 할머니나 외숙모가 그렇고, 친구와 선배 중에서도 결벽에 가깝게 집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다. 그들에게 정리정돈 팁도 묻고 노하우도 배워가면서, 나도 어느새 주부로서 조금씩 청소에 눈을 뜨게 되었다. 

 

경제공동체인 남편 역시 원래는 청소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신혼 때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짠해서 두고 보기가 힘들었나보다. 이후 정리정돈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청소도구를 사들이며 아침마다 청소를 해주는 등 청소남의 면모를 어느 순간부터 유감없이 발휘하는 남편이다. 독일살이를 할 때는 얼마나 깨끗한 집들을 많이 구경했는지, 그곳에서 얻은 청소 정보도 상당히 쌓였다. 

 

이렇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배움 및 연습 끝에, 나도 이제는 청소를 '잘' 하진 못해도 '어느정도'는 하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바닥청소와 부엌정리에 특화된 남편이 매일 말끔히 그곳들을 치워주면, 나는 그 외의 곳들을 정리하고, 버릴 것 버리고, 물청소 및 마른걸레질을 하는 수순이다. 시력이 나쁜 나이기에 청소 시 안경 착용은 필수며, 냄새에 민감한 남편과 딸내미를 위한 매일의 환기와 통풍도 중요한 과정 단계다. 

 

그 중 나름대로 자신있는 내 특기는 욕실 청소. 여러 청소고수들의 가이드를 보고난 후 내 나름의 노하우를 버무려 만들어낸 방법이다. 독일 어느 가정집을 가나 욕실이 모두 건식이라 정말 깜짝 놀랐었고, 와중에 먼지 한 톨 없이 청결해 누워서 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있어 건식 욕실로 유지하기는 힘이 들지만, 매 주 정성을 다해 청소하기에 우리 집 욕실만큼은 독일 가정집의 80-90%수준은 되지 않을까 하며 소심한 자부심을 가져본다. 

 

 물론 여전히 청소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오늘도 나는 버려야 할 것을 손에 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아무리 위치를 바꿔봐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서랍장과 진열장을 하릴없이 바라본다. 스스로 만족하는 달인 급의 청소와 정리정돈의 상태가 언제 완성될지, 뒤늦게나마 발현된 내 안의 이 청소 욕구가 언젠가는 그 빛을 발하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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