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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점심

by 맘씨 posted Dec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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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끝물이던 어느 평일 점심, 자전거를 타고 아들과 길을 나섰다. 이전부터 가고싶던 식당에서 둘이 오붓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식당은 집에서 약 2km, 자전거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길에는 차도 사람도 많아 사방으로 주의를 하며 지나야 했고 초겨울 바람까지 제법 차가워 얼굴도 손도 꽤나 시렸다.

힘들게 도착한 식당,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보니 이상하게도 손님이 한 팀밖에 없다. 지역 소식지에도 기사가 났던 식당이라 줄을 설 요량으로 왔는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직장인들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가서 그런거겠지 하며 구석자리에 착석을 했다. 메뉴를 두 가지 주문한 후 기다리는데, 우리 주변으로 날파리가 날아다닌다. 그때부터 조금씩 언짢아지는 기분을 아들 앞 엄마의 의연한 표정으로 애써 감춘다.

서빙 직원이 오셔서 반찬들을 먼저 올려주신다. 상추와 고추, 쌈장 쌈무 및 생마늘, 두개의 밑반찬인 무말랭이와 콩나물무침이다. 그런데 콩나물무침의 양이 한 입 먹으면 딱 사라지겠다. 간을 봐달라며 애들 입에 넣어줄 때 집는 양, 딱 그 정도다. 추가반찬은 셀프라는 안내판에 반찬코너로 가 보니 먹고픈 콩나물무침은 없고, 주지 않으신 김치는 또 있어 김치만 퍼왔다. 이후 다른 손님이 콩나물무침이 반찬대에 없다고 문의하니 직원 왈 "오늘 그건 더 없어요. "

뭐 밑반찬이야 (점심 1시지만) 금세 떨어질 수도 있지, 정식 메뉴는 푸짐하고 맛있을 거야, 우리는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린다. 주린 배를 안고 바람을 맞으며 힘껏 페달을 밟아 찾아온 식당이다. 내 마지막 휴가날 아들과 함께하는 오랜만의 외식 점심이다. 맛있을 것이고 또 맛있어야만 한다.

10여분의 시간이 지나 정식 메뉴들이 등장한다. 고기접시가 나오고, 찌개가 대접에 담겼고, 공기밥과 국수가 놓였다. 그릇 개수는 단촐하다. 음식의 개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 하나하나 따뜻하고 맛좋기만 하면 된다.

부푼 마음으로 찌개를 한 입 뜨는데, 아뿔싸 그 온도가 미지근하다.. 양은 대접에 담긴 찌개에 뚝배기의 팔팔한 뜨거움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던 건가. 이어 고기를 집어먹는데 따뜻하지도 않고 내내 서걱거린다.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비벼진 국수를 아들에게 덜어준 후 입에 넣는데, 면이 덜 익었다. 아 이건 좀 심하잖아, 마구 속상해지기 시작한다. 딱딱한 면들은 살얼음이 언 비빔양념과 전혀 섞이지도 어우러지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더 비벼보려다 옷에 양념이 다 튀어버렸다. 시간이 좀 지나서 녹으면 괜찮을까, 3분쯤 기다렸다가 집어 먹어보는데 역시나 매우 화가 나는 맛이다.

이후 모자는 묵묵히 음식을 입에 넣는다. 대화도 없고 눈짓도 없다. 고기만 상추와 고추 곁들여 겨우 다 처리를 했다. 국수는 3분의 2 이상을 남겼고 찌개는 양이 거의 그대로 남았다. 국수값만이라도 환불받을까, 익지를 않았는데.. 정당한 손님으로서의 권리를 찾을것인가, 그냥 모른척을 할까, 뭔 말이라도 하면 아들 앞에서 진상고객처럼 보일거야 가만있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온다.

아들이 내 표정을 살피다가 얼른 가자며 먼저 일어난다.

"좋은 맛은 아니지만, 아주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서 나는 나름대로 배부르게 먹었어. 근데 엄마가 거의 못 먹어서 어쩌지?"

엄마도 제법 많이 먹었다고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외투를 입는데, 날려버린 내 귀중한 점심시간과 그 비용에 갑자기 마구 억울해져서 도저히 안되겠다. 펜을 꺼내 작은 종이에 조그마한 글씨로 아래의 문구를 남겨 밥그릇 밑에 소심하게 깔아둔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국수면이 안 익었고 찌개와 고기가 따뜻하지 않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 나의 작고, 소심하기 그지없는 그 쪽지를 읽었을까 고개가 갸웃해진다. 아마 식당 측에서는 처음 보는 손님의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던동 차차 그 곳의 음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싶다.

점심식사든 저녁식사든, 외식을 하며 양질의 음식을 접하는 시간을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 입맛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한번 맛이며 기타 등으로 척이 진 식당에는 발길을 결코 안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예전의 내가 맛없고 비싼 음식을 사먹어도 잠깐 불쾌하고 말았다면, 요새는 별로인 요리를 먹느니 집밥이나 도시락, 샌드위치를 사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휴가 끝물의 고생스러웠던 평일 점심외식은 높았던 기대를 와장창 깨버리며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모자는 이번의 경험으로 느낀 바가 많아졌음을, 돌아온 집에서 나누는 뜨거운 핫초코와 잘 우린 차 한잔씩에 허심탄회하게 풀어내 본다. 늘 긍정적이고 고마운 아들, 다음 번 자전거 맛집탐방은 엄마가 꼭 성공적으로 추진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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