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중화요리집을 찾거나 시켜먹을 때면 나는 짬뽕, 남편은 간짜장을 주문한다. 큰애는 나를 따라 짬뽕을 잘 먹고, 작은애는 짜장면 혹은 볶음밥을 좋아한다. 서로간 선호도가 확실하니 겹치지 않게 시켜 조금씩 나눠먹는 재미가 있다.
나름대로 알아주는 짬뽕 매니아라 맛있다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고, 집에서 칼국수면이나 굵은 사리면으로 종종 매운 짬뽕을 만들어먹기도 하는 나다. 고추기름 불향이 밴 매콤한 국물에 탱글하고 부드러운 면과 각종 야채, 그리고 해물의 맛은 언제나 내 침샘을 자극한다. 곱배기는 내게 양이 너무 많으나 정량 한 그릇 안에 있는 면과 건더기는 한 톨도 빠짐없이 먹어준다.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게 고 2때 엄마와 종로의 어느 오래된 화상 중국집에 가서 먹었던 고추짬뽕이었다. 점심시간을 살짝 비켜 도착해 앉아 엄마는 굴짬뽕, 나는 고추짬뽕을 주문했었다. 마구 지지고 볶는 소리에, 홀 안을 가득 채우던 매운 불 향. 몇 분 안되어 직접 주방장 아저씨가 가져다주셨던 짬뽕 두 그릇, 엄마와 나는 너무 맛있어서 코를 박고 먹었다.
그때처럼 강렬하게 맛있었던 짬뽕은 다시없을 것이다.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도 그 때의 거리, 홀의 분위기와 냄새, 맛과 분위기가 잘 떠오르니 말이다. 제대로 처음 먹어봤던 짬뽕이었고 엄마와의 당시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서 더 특별하고도 소중한 맛이었다.
짬뽕을 좋아하는 나만큼이나 남편은 간짜장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춘장에 불맛나게 달달 볶은 양파향이 좋고, 그 양념에 비벼먹는 면 맛이 너무 좋단다. 그 와중 짬뽕 채소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나에 비해 남편은 간짜장의 야채들을 제법 남기는 편이다.
"양파 맛있다면서 왜 그리 많이 남겨?"
물으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
"야채에서 우러난 풍미가 면 양념에 충분히 묻어나서. 이 정도면 됐어."
간짜장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수십년간 늘 변함이 없다.
어느 주말에는 왠일인지 요리 유튜브를 시청하길래 보니 집에서 만드는 중식요리 코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에 조리방법도 어렵지 않다 생각했는지, 남편은 토요일 밤늦은 시각 마트로 달려가 춘장이며 면이며 이것저것을 구입해 왔다. 일요일 점심에 해먹을 간짜장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잠들기 전까지 내내 즐거워하는 남편 표정이 귀엽고 의욕이 넘쳤다.
드디어 수제 간짜장 개시일. 양파를 여러 개 다지고, 돼지고기를 썰고, 춘장을 웍에 볶는 남편 손길이 분주하다. 처음부터 혼자 다 하겠다기에 나는 편안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요리과정 인증샷을 간간히 찍어주며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의 자세로 앉았다. 확실히 손목 팔목 힘이 나보다 좋아서인지, 웍을 볶는 자세며 각도가 더 그럴싸하다.
30분쯤 걸려 완성된 네 그릇의 간짜장이 식탁에 가지런히 놓였다. 가운데에는 김치 두 종류를 놓는다. 단무지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아쉬운대로 생양파에 춘장을 조금 덜어 놓는다. 세팅을 모두 끝내고 사진을 한 번 더 남긴다.정성이 가득 담긴 남편, 아이들 아빠의 첫 수제 집 간짜장이다. 감사 인사와 함께 젓가락을 들어 후루룩 먹기 시작한다.
볶음양파와 고소한 돼지고기가 잘 볶아진 춘장에 아주 잘 버무려졌다. 불맛도 꽤 잘 나니, 간짜장 양념은 이 정도면 합격이다. 면 삶기야 남편의 특기이므로 익힘 정도에 전혀 불만없다. 고루 묻혀 비벼먹으니 꽤 맛이 좋다. 다만 양파의 양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고, 양배추도 함께 넣었으면 하며, 춘장양념 양을 다음번엔 좀 더 늘린다면 딱 좋겠다.
순식간에 모두의 입속으로 사라져버린 맛난 간짜장, 부른 배를 두드리며 떠들썩했던 일요일 점심을 마무리한다. 아들은 설거지를 자청하고, 딸은 후식으로 시원한 귤을 하나씩 돌려주니 이번 식사는 손 하나 까딱 안하고 꽁으로 받아먹었다. 오늘은 남편이 간짜장 요리사 했으니 다음번에는 내가 짬뽕 요리사 해야겠다. 그 때엔 더 특별히 공을 들여서 만들어야지.
간짜장 하나로 참 떠들썩하게 즐거운 우리 집 점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