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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끼

by 맘씨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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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쉬던 월요일, 나는 여섯 끼를 차려 먹었다.

오전 8시에는 여느 평소처럼 아침밥을 먹었다. 쌀밥에 배추김치, 고등어구이와 달걀말이, 봄동을 넣은 된장국이 메뉴다. 밥 양은 평소처럼 작은 종지에 한 공기. 밥 위에 반찬을 얹어먹고 난 뒤 봄동 내음 가득한 국에 나머지를 말아 훌훌 넘겨 마무리한다. 설거지를 하며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다. 혼자서 차 한잔을 하고서 아침식사 끝.

오전 11시. 그 사이 청소기 한 번, 빨래 한 번 돌리고 독서를 한 권 한다. 뒹굴거리며 쉬기만 하는데도 불현듯 출출해진다. 이럴 때는 냉동 간편식이 좋은 선택지. 냉동실 속 냉동만두를 두 종류 꺼내 기름을 둘러 굽기 시작한다. 상추와 양파, 시금치와 토마토도 적당량씩 꺼내 씻고 썰어 간단한 샐러드를 만든다. 쟁반에 구워진 만두를 올리고 샐러드 얹어 올리브유 둘러주니 오전 요기거리가 완성되었다.

기름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여지없이 하나 둘 부엌으로 나온다.

"두 가지 만두네. 나는 김치만두가 맛있더라."

"찌는 것도 맛있는데 굽는 게 더 좋아."

"샐러드랑 만두랑 잘어울린다."

세 손의 젓가락들이 바삐 움직이고, 수북하던 한 접시가 금세 비워진다. 다들 젓가락을 아쉬운 듯 빨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배들이 덜 찬 모양이다.

만두그릇 치우기가 무섭게 다시 점심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 메뉴를 김치볶음밥으로 결정하고, 베란다 김치냉장고에 시콤하게 익은 김장김치를 몇 줄기 썰어왔다. 프라이팬에 파기름을 내어 볶다가 송송 자른 김치와 스팸을 넣어 섞어준 후 밥을 넣어 비비듯이 합쳐준다. 거기에 고추장 반숟갈 턱, 고춧가루 한스푼 휙 두르고, 소금 톡톡 후추 툭툭 뿌려준다.

그 사이 다른 팬 하나에 기름을 둘러 달걀 3개를 익힌다. 나와 딸은 노른자 톡 터지는 반숙을 좋아하지만 아들은 완전히 튀기듯 익은 프라이를 선호하므로, 잘 지켜보며 시간차를 두고 익혀야 한다. 이어 잘 볶아진 김치볶음밥에 각자의 달걀프라이를 취향에 맞게 걸쳐주면 12시 반, 점심 식탁 완성이다.

볶음밥은 모양새는 단촐하나 풍성한 맛이 난다. 다른 반찬을 내놓을 필요도 없다. 상큼한 신김치의 향과 식감이 먹을수록 입맛을 돋운다. 나와 딸은 노른자를 조금씩 터뜨려가며 밥에 비벼 먹고, 아들은 달걀부침을 숟가락으로 끊어가며 밥에 얹어 먹는다. 아침 봄동된장국 조금 남은 건 곁들여 마시는 국물로 더없이 잘 어울린다.

밥솥의 밥이 어느새 모두 사라졌다. 저녁 현미밥을 할 요량으로 찹쌀현미를 몇 줌 불려 둔다. 점심설거지 후 다시 뒹굴거리다가, 아이들과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한다. 12세 관람 가능가를 고르다보니 조용하고 소박한 가족 일상영화가 선택되었고, 내용이 내내 잔잔하게 흘러가더니만 중간쯤부터는 음식 해 먹는 장면이 자꾸만 나온다. 보다보니 또 배가 출출해진다.

그리하여 먹을 오후 3시의 간식은 비빔국수다. 고추장에 매실액, 식초와 다진마늘, 올리고당과 참기름, 깨소금을 비중대로 착착 섞고 잠깐이라도 냉장실에 넣어둔다. 냄비에 물을 팔팔 끓여 소면을 딱 3인분만 삶는다. 체에 받혀 얼음같이 찬 물에 바르륵 헹군 후 물기를 팔팔 빼어 대접에 담는다. 소면에 양념장, 김가루, 상추 찢은 것을 양껏 올리고 있으려니 어느새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식탁에 와 있다.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각자의 젓가락이 쨍갈거리며 바쁘다.

"달걀을 아침부터 계속 먹어서 엄마가 이번엔 안 넣었구나."

"나는 비빔국수에 김치 올려먹는 게 좋아."

"소면은 언제먹어도 안질리고 맛있어."

후루룩 소리들 사이로 오고가는 대화가 바쁘다. 먹을때마다 마치 이게 오늘의 첫 끼니인양 눈빛들이 새롭게 반짝거린다.

부른 배를 두드리고보니 오후 4시 반이 넘어가고 있다. 이따 네 식구 다같이 저녁을 먹어야하니 배가 얼른 꺼져야 할텐데.. 이제와서 괜한, 소용없는 걱정도 슬쩍 해본다. 시간은 초저녁에서 저녁때로 넘어가고 어둠이 점점 짙어온다. 불려둔 현미로 밥을 안치고, 저녁메뉴로 꺼내뒀던 삼겹살과 목살에 살짝 밑간을 한다.

띵동. 남편이 6시 45분쯤 도착한다는 전갈이다. 밥은 그 전에 완성될 것이니 찌개 끓이고 고기 구워 상 차려두면 된다. 먼저 돼지고기를 조금 볶다 받아둔 쌀뜨물을 붓고 된장 고추장을 풀어준다. 청양고추, 양파, 애호박, 대파, 두부 담뿍 썰어넣어 익히다가 다진마늘 한술, 신김치 한수저, 청국장 한큰술 넣어 바글바글 끓여준다.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새 밥이 다 됐다. 윤기가 좌르르 고슬하게 흐르는 것이 아침밥보다 더 잘된 듯하다. 뒤집어 섞어준 후 이제 고기를 구울 시간. 창문들을 활짝 열고 팬 후드를 세게 튼다. 달구어진 무쇠팬에 차악 소리가 나게 목살부터 얹고 잘라가며 익혀준다. 기름을 닦아낸 후 다시 삼겹살을 차례로 굽는다.

고기 굽는 것은 10분이면 끝이 난다. 잘 구워 한입크기로 자른 고기들을 차곡차곡 쟁반에 담는 동안 아이들은 곁에서 상차림을 도와준다.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고 김치를 꺼낸다. 밥그릇과 앞접시를 가족 수대로 준비한다. 청국장을 놓고, 기름장과 쌈장을 올리고, 상추와 고추 및 마늘, 밑반찬을 차곡이 담는다.

마침 남편도 땡 하고 제 때 도착하니 네 식구의 저녁식사가 순조로이 시작이 된다. 나와 딸은 쌈을 좋아해서 고기도 쌈에, 청국장비빔밥도 쌈에 싸먹는다. 남편과 아들은 밥맛, 고기맛을 오롯이 음미하며 먹다가 문득 생각난 듯 상추나 고추를 한 입씩 베어무는 타입이다. 다른 모양새들로 왁자지껄하게 서로가 맛있다 맛있다 하며 저녁식사가 끝이 난다.

이제 시간은 늦은 저녁 8시. 밥을 이미 두 그릇씩 먹은 남편과 아이들이다. 하지만 고기를 먹고서는 매운라면 한 젓가락이 무지무지 당긴다는 거,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줄까.

"라면 끓여줄까?"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 참으로 격한 반응들이다.

남편이 라면물을 잡고 고추를 송송 써는 동안 나는 신김치를 좀 더 꺼내 썰어놓는다. 말아먹는 밥은 살짝 식은 게 맛있으므로 밥도 미리 한 대접 퍼놓는다. 3분의 기다림, 얼큰하니 맛있게 끓여진 매운 라면과 김치 앞에서 우리 식구는 또다시 왕성한 식욕과 바쁜 손놀림을 구사한다. 마주한 하루의 마지막 끼니가 막을 내린다.

 

"얘들아 오늘 총 여섯 끼 먹은 거 알아?"

엄마가 건넨 말에 아이들 표정이 멋쩍으면서도 밝다.

"다 너무 맛있어서 금방금방 배가 꺼졌나봐요. 헤헤."

 

어느 쉬던 월요일, 나는 여섯 끼니 차리느라 하루가 어찌 갔는지도 모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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