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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요리

by 맘씨 posted Oct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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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이들은 면을 좋아한다. 세 끼를 모두 면으로 먹어도 맛있고 좋단다. 물론, "간단히 면으로 때우는 식사"의 개념은 전혀 아니며 모든 면끼니가 요리의 수준에 근접해 있어야만 한다.

남편은 특히 라면을 잘 끓인다. 라면 잘 끓이는 분들이야 쌔고 쌔지만 객관적으로도 남편은 늘 완벽한 물 계량과 불조절, 철저한 면 익힘을 통해 스프의 향이 면에 더없이 잘 배어든 완성품을 내놓는다. 청양고추와 베트남고추를 잘 썰어 칼칼한 맛을 더하고, 추가 주문이 있을 때만 달걀이나 만두, 떡 등을 더해 요리해준다. 검증된 실력자라 친척이나 친구 집에 놀러가도, 캠핑을 가도, 라면 요리사는 무조건 남편이다.

그런데 나는 라면이 어렵다. 몇 번을 따라해보고 계량컵도 써보고 했지만 "그 맛"이 잘 안난다. 어쩔 때는 너무 졸아서 짜고, 어쩔 때는 살짝 한강물 라면이 된다. 나는 음식하는 데에 그런대로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는 편인데, 기성품이나 레토르트를 그대로 끓이거나 볶거나 익히는 것에는 완전히 젬병인 것 같다. 설명서를 보면서 해도 이상하게 조금씩 다 망하고 만다.

결국 나는 슬프게도 처음부터 내가 고생해서 먹을 것을 만들어내야 결과물이 좋은 셈이다. 양념을 손수 하고, 칼로 재료를 썰어 다듬고, 불과 물을 써서 한 냄비, 한 접시씩 제대로 창조해낸 것들이 맛도 향도 모양도 좋다. 신라면을 맛나게 끓이는 것에는 젬병이지만, 파마늘 양파 양배추 배추를 고추기름에 달달 볶다 육수를 붓고 사리면을 넣어 익혀 버섯과 고추고명을 올려 내놓는 엄마표 짬뽕면에는 식구들이 엄지척하는 그런 원리다. 내 짜파게티는 거의 매번 떡지거나 맛이 없게 되지만, 춘장을 불맛나게 달달 볶다가 돼지고기와 양파 감자 넣어 익혀서 삶은 우동면이나 칼국수면에 짠 올리는 수제 자장면에는 애들이 열광하는 그런 원리고.

이런 나를 완전히 파악한 우리 식구들이다. 사람은 먹을 것에 가장 예민하고 또 예리한지라, 기성품 면을 끓여먹을 때는 무조건 아빠가 등판하고, 다른 면 요리는 엄마의 몫으로 자연스레 역할분담이 되었다. 남편이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식탁 수저를 놓거나 할 필요도 없고, 가스렌지 근처에 아예 얼씬도 못하며, 완성된 라면을 옮기거나 그릇에 분배하는 행위조차도 나에겐 금지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나, 직접 만드는 면요리에는 강하다.. 코로나로 콕 박혀지냈던 어느 주말, 나는 불금 저녁부터의 연달아 6번의 식사를 모두 면요리로 화려하게 채웠더랬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김치말이국수, 겨자와 파를 듬뿍 넣어먹는 차가운 메밀소바, 온갖 해물이 잔뜩 들어간 토마토파스타, 매콤새콤 훌훌 넘어가는 열무비빔국수, 눅진한 크림소스의 새우크림파스타, 멸치육수에 갖은 야채와 버섯 넣고 끓여낸 칼국수까지.

과연 면식가들답게, 남편과 아이들 모두 후룩후룩 맛있게 여섯 끼 연속 잘도 먹었고, 심지어 밤늦은 야식으로 아빠표 라면도 하나씩 뚝딱했다는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홀로 외로운 밥순이인 나는 결국 일요일 저녁 된장찌개 팔팔 끓여 고봉밥에 비벼먹고 말았다는, 그러고 나서야 속이 편안해졌다는, 뭐 그런 우리집 면요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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